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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9월 19일 제목: 부족 증후군 성구: 시 23:1-3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부족 증후군”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일본 식민지 시대나 6.25전쟁을 통하지 않은 세대는 오늘 우리가 겪은 IMF 시련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경험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직장을 잃고, 사업이 도산하고, 수입이 줄고, 생활이 궁핍해지는 것은 견디기 힘든 시련이었습니다. 그와 같은 일련의 경험이 우리들의 마음속에 “부족 증후군”이라는 부정적인 마음의 병을 일으켜 놓았습니다. 직장을 잃을까 두려워하고 사업이 실패할까 하는 두려움, 사회에서 버림받고 낙오자가 되는 공포 등 그래서 마음은 패배의식, 무력감, 좌절감, 절망 같은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으로 얼룩 져 있습니다. 이런 부족 증후군에서 벗어나 긍정적이고, 성공적이며 축복의 생각으로 가슴 가득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나의 목자로 영접하고 예수님을 삶의 근원으로 삼고 삼아야만 치료받을 수가 있습니다. 다윗은 여호와가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라고 선언했습니다. 왜냐하면 여호와는 전지전능 무소부재 하신 하나님이시요, 우리의 창조주가 되시기 때문에 이 여호와가 내게 목자가 되면 부족함이 없을 것은 당연한 이치인 것입니다. 왜그러냐? 첫째로, 다윗은 말하기를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신다고 말했습니다. 목자가 양을 푸른 초장에 누이시면 푸른 초장에서 실컷 풀을 뜯어먹고 배고픔이 없게 만들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목자로 삼으셨으니 이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양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십자가 밑에 우리가 누워서 실컷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초장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예수님이 만드신 초장에 우리가 가서 함께 누워서 주님이 주신 푸른 풀을 뜯어먹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주님은 십자가 밑에서 죄의 용서와 의의 초장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용서와 의의 약속의 말씀들이 그 초장에서 자라고 있기 때문에 그 약속의 말씀을 취하는 것이 우리가 그 풀을 뜯어먹고 생명을 얻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십자가 밑에 나가면 주님께서 용서와 의의 풀이 자라게 하셨는데 로마서 4장 25절에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하는 이것은 바로 예수님이 그 초장에 자라게 한 풀인 것입니다. 또 로마서 3장 23절로 26절에 보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이와 같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십자가 밑에서 하나님이 자라게 한 푸른 풀인 것입니다. 이 초장에 하나님이 누이신 것은 이 풀을 우리가 먹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 하나님의 약속을 먹을 수가 있겠습니까? 이 말씀을 묵상해야 되는 것입니다. 야 푸른 초장 바로 십자가 밑에 이런 약속의 말씀이 있구나 이 말씀을 우리가 마음속에 생각해 보고 또 생각해 보고 묵상해서 그 말씀의 뜻을 마음속에 깨달아 알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 말씀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시고 의롭게 해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이 모두다 푸른 초장의 약속의 풀인 것입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고 그 다음에는 마음에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그리고 감사하고 입으로 시인하면 우리가 그 풀을 받아먹게 되는 것입니다. 묵상하고 믿고 받아 들이고 감사하고 입으로 시인하면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셔서 죄의 용서와 의의 풀을 나게 했었는데 이 약속의 풀을 우리가 실컷 뜯어먹고 우리가 배불러지고 용서와 의가 충만해야 되겠습니다. 그 초장에는 또한 성령 충만의 풀도 돋아나고 있습니다. 그 풀들을 보세요. 요한복음 14장 16절로 17절에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고 했었습니다. 진리의 성령을 세상은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나 성령은 우리와 함께 거하시고 또 우리 속에 계시겠다. 이 말씀을 우리가 깊이 마음속에 묵상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 속에 계신다는 것을 깊이 생각해 보고 이것을 믿고 받아들이고 감사하고 입으로 시인하면 이 초장의 풀을 우리가 뜯어먹는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7장 37절로 39절에도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하나님께서는 예수를 믿을 때 성령이 뱃속에서 강물처럼 흘러 나리라고 약속을 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을 깊이 생각해 보고 이대로 이루어진 것을 믿고 받아들이고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고 입으로 시인하면 이 말씀이 내게 섭취되게 되고 내가 그 풀을 뜯어먹고 성령 충만의 영양분을 섭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성령 충만의 초장에서 우리는 거기에 도달한 하나님의 약속의 풀을 생각하고 묵상하고 믿고 받아들이고 감사하고 입으로 시인함으로 우리의 영양분으로 삼아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또한 십자가 초장에는 치료의 풀밭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8장 16절로 17절에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를 다 고치시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이 말씀을 묵상해야 됩니다. 주님께서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다는 사실을 우리는 깊이 생각해 보고 이것을 믿고 받아들이고 감사하고 시인하면 이것이 내 영양분이 되는 것입니다. 이 풀이 내 영양분이 되고 내 치료가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24절에도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빌라도에 의해서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다는 말씀을 깊이 생각해 보고 묵상하고 그것이 그렇게 되었구나 우리가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그리고 감사하고 입으로 시인하면 이 치료가 우리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 치료의 초장에서 치료의 풀을 우리가 먹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 53장 4절에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했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주님이 우리의 질고를 정말 짊어지고 우리 슬픔을 당해 버렸기 때문에 이것은 우리가 당할 필요가 없지 않느냐 깊이 생각해 보고 묵상하고 그대로 믿고 내 것으로 받아들이고 감사하고 입으로 시인하면 이 푸른 초장의 풀은 내가 먹어서 내게 소화가 되고 내 영양분이 되는 것입니다. 이 치료의 초장에서 치료의 약속의 풀을 묵상하고 믿고 받아들이고 감사하고 시인하면 언제나 여러분 치료 속에 충만하게 살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이 십자가 밑에는 축복의 초장이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 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 풀이 자라고 있습니다. 십자가 밑에서 이 축복의 풀이 자라고 있습니다. 이 풀을 우리는 묵상하고 아 예수께서 저주를 받으셨으니 나는 저주받을 필요가 없구나 묵상하고 믿습니다. 이것은 내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축복 받은 사람입니다. 이렇게 나가면 이 풀이 소화가 되는 것입니다. 이 풀을 내가 먹어서 소화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축복의 영양분을 섭취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 후서 8장 9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 말씀을 묵상해 보십시요. 주께서 그토록 부요하신 분이 나 때문에 가난하게 되신 것입니다. 그 가난하심으로 인하여 나로 부요케 하셨다. 그러면 가난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제하여진 것이 아닌가. 그러면 그리스도의 부요가 내 것이 아닌가. 깊이 생각하고 묵상하고 믿습니다로 받아들이고 그리고 감사하고 나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부요케 되었다고 시인하게 될 때에 이 초장의 풀은 나의 영양분이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신명기 8장 18절에 있는 말씀을 여러분 한번 따라 읽으십시오.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서 재물 얻을 능력을 우리에게 주셨다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를 믿지 않은 사람에게도 비를 주시고 햇빛을 주시고 양식을 주시는데 주를 사랑하는 자에게는 재물 얻을 능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해야 되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이 능력을 주신 분이시구나 이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감사하고 시인하면 내 영양분이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리고 또 우리는 십자가 밑에 가서 영생 천국의 초장에 눕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1장 25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이것을 가만히 묵상해보면 죽어도 산다. 그러므로 죽음이 겁날 것이 없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부활이요 생명임으로 이미 죽음을 정복하고 일어나셨음으로 주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겠다. 그럼 이를 묵상하고 이를 믿습니다로 받아들이고 내가 감사하고 시인하면 나는 죽음이 겁날 것 없습니다. 죽어도 살기 때문에 겁날 것이 없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절로 3절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그러면 내가 죽음의 저 건너편에 건너가도 있을 곳이 없어 방황하지 않겠구나 생각을 하고 묵상을 하고 이것을 믿고 받아들이고 감사하고 시인하면 내가 천국에 내 집이 있는 것을 확실히 받아들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절로 17절에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이러므로 이것을 묵상할 때 역사는 이대로 진행할 것이 아니라 갑자기 주님께서 강림하심으로 예수 믿는 사람은 다 공중으로 올라가서 변화 받고 주와 함께 영원히 다스리며 살게 된다는 이것을 생각하고 묵상하고 이 진리를 믿고 받아들이고 그리고 입술로 시인하고 감사하면 여기에 우리가 소속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예수 믿는 사람들이 영양실조에 걸려 있습니다. 왜 예수 믿는 사람들이 영양실조에 걸려 있습니까? 이는 그들이 주님께서 예비한 십자가 푸른 초장에 누워서 이 말씀의 풀을 먹지 않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들은 그저 십자가에 대해서 말만 합니다. 그러나 십자가 밑 초장에 주님께서 돋아나게 한 이 수많은 약속의 풀들을 묵상하고 믿고 받아들이고 감사하고 입으로 시인함으로 이것을 내 영양분으로 삼으면 내가 항상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잘 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삶을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저는 매일 아침 일어나자 마자 십자가 초장에 가서 이 주님께서 예비한 약속의 푸른 풀들을 기억하고 이것을 묵상하고 이것을 받아들이고 이것을 감사하고 입으로 시인하고 내가 먹습니다. 푸른 초장의 풀의 약속은 아무리 뜯어먹어도 또 돋아나고 아무리 뜯어먹어도 또 돋아나는 것입니다. 매일 먹어야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초장에 드러눕혀 주어도 못 먹으면 이것은 우리 책임인 것입니다. 오늘 영육 간에 영양실조가 걸린 성도들 하나님 원망할 수가 없습니다. 왜 나는 믿음이 없다고 말합니까? 이 초장의 풀을 먹었으면 믿음이 얼마든지 생겨나고 언제나 넘쳐나고 승리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 초장의 풀밭에 눕혀 놓아도 이를 묵상하고 믿고 받아들이고 감사하고 시인함으로 내가 소유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부터 여러분은 주님께서 십자가 밑에 예비한 푸른 초장에 하나님이 돋아나게 한 약속의 풀들을 묵상하고 믿고 받아들이고 감사하고 입으로 시인함으로 여러분의 영양분으로 삼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우리 목자는 우리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해 주신다고 합니다. 성령님은 우리 영혼을 평안하게 하시고 위로하시는 물이 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령님과 교통을 하고 성령님과 친해지면 우리 속이 시원해지고 우리 갈급함이 채워지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6절에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우리가 답답한 일을 당해서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하고 나아갈지 모를 때에 성령은 우리를 엎드려 기도하게 하시고 우리를 통하여 간절하고 탄식하는 기도를 드림으로 이 문제가 해결 받게 해주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를 시원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성령님과의 교통이 늘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고 의지하면 성령님과 함께 살아야 됩니다. 성령님은 우리 인생과 함께 살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성령은 지혜의 영으로 우리가 지혜가 부족할 때 지혜를 주시고 명철이 부족하면 명철을 구할 때 명철을 주시고 우리가 어찌할 바를 모를 때 기도하면 좋은 카운셀링을 주시고 주님께서 재능을 주셔서 능력을 얻게 하시고 우리에게 깨달음을 주셔서 지식을 주시고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시고 거룩하게 살게 하시는 능력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은 여러분과 나와 인생 동업자라서 인생을 함께 살기 위해서 우리 곁에 항상 계신 분이신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성령과 의지하면 우리는 물가에서 상쾌한 물을 마시는 것처럼 갈급함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또한 성령님을 통하여 항상 천국이 우리 속에 임하여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14장 17절에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성령이 오셔서 우리 마음속에 의와 평안함과 기쁨으로 채워주셔서 천국이 우리 속에 늘 채움 받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6장 16절에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 이처럼 우리 목자는 성령의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셔서 성령과 함께 거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심으로 우리를 상쾌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의 목자는 내 영혼을 소생시켜 준다고 말했습니다. 세상 삶 속에 죄와 세속과 육체의 일과 마귀의 억압으로 염려, 근심, 불안, 초조, 미움, 원망, 시기, 질투 등이 영혼의 생명력을 빼앗고 세상 잠에 떨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것들이 마치 진딧물같이 우리에게 붙어서 영혼의 생명력을 빼앗아 버리고 우리는 잠듭니다. 이렇기 때문에 예배를 마치고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세상에 살다보면 그만 기도도 나오지 않고 찬송도 나오지 않고 성경이 읽기 싫고 마음이 답답해지는 것입니다. 세상에 사는 동안 그와 같이 우리의 영혼이 잠들어 버리고 죽어 버리고 힘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교회에 와서 말씀을 들으면 말씀이 우리의 영혼을 소생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시편 119편 49절로 50절에 “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나로 소망이 있게 하셨나이다 이 말씀은 나의 곤란 중에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음이니이다” 주의 말씀이 우리를 살려줍니다. 여러분이 듣고 있을 동안에 말씀이 여러분 속에 비오듯이 임하여서 세상의 먼지를 씻어 내어 주시고 살려 주는 것입니다. 또한 성령님의 생기로 소생케 합니다. 여러분이 교회에 와서 예배 드릴 때에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영혼에 생기를 부어 주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장 21절에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 예배 드릴 때 성령을 주셔서 우리 마음에 구원의 확신이 다시 일어나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라 세상으로 말미암아 굳어진 마음을 주님께서 제하여 주시고 예배 드릴 때에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새 영을 주고 새 마음을 주어서 우리 영혼이 소생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에 와서 우리가 함께 기도할 때에 기도로서 우리 심령이 소생됩니다. 히브리서 7장 25절에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우리가 주님께 기도로 나아가면 주님께서 우리를 온전히 구원해 주시는 것입니다. 찬송으로 우리 영혼을 소생시킵니다. 시편 22편 3절에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우리가 찬양을 드리고 함께 기뻐할 때 주의 성령이 우리에게 임재하셔서 우리 영혼을 소생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교회에 와서 성도들과 서로 인사하고 서로 악수하고 이렇게 할 때 성도의 교통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소생시켜 주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4절로 15절에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규모 없는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안위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오래 참으라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오직 피차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좇으라” 우리가 서로 교통하면서 서로 경계하고 서로 꾸짖고 서로 위로하고 서로 회개시켜주고 서로 돌봐주므로 우리 영혼이 소생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교회를 멀리하면 안됩니다. 구역예배나 삼일기도회 혹은 새벽기도회 등 할 수 있으면 많이 모임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목자가 이를 통하여 우리 영혼을 소생시켜 주는 것입니다. 세상의 죄와 탐욕과 세속으로 말미암아 찌들어지고 병들고 잠들고 죽은 영혼을 하나님이 모임을 통해서 말씀과 성령과 교통을 통하여 우리 영혼을 소생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목자가 항상 여러분을 붙잡고 이 일을 해 주시는 것입니다. 넷째로, 우리의 목자는 우리를 의의 길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우리의 삶의 환경이 부정부패와 썩어져 가는 현실을 매일 매일 목도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잡아넣고 형무소가 꽉 들어차게 해도 변화가 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의의 근원이신 예수님이 마음을 점령해야 양심의 등불이 켜지는 것입니다. 양심이 죽어서 캄캄하니까 캄캄한 곳에 어떠한 어두운 일도 다 행하는 것입니다. 양심의 등불이 켜져서 환하게 밝아지면 어두움의 일을 할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의인은 소금과 같아서 의가 없는 개인은 육적으로 부패합니다. 마음속에 의가 없으면 마음속에 등불이 꺼진 마음은 캄캄해집니다. 소금이 없는 것은 썩어집니다. 그러므로 의가 없는 개인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따라 캄캄한 곳에서 얼마든지 죄를 짓고 부패한 것입니다. 의가 없는 가정은 부패합니다. 의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가정에 밝은 등불을 켜 놓으면 밝아지지만 의가 없는 가정은 온갖 부패가 들어와서 남편이 아내를 속이고 아내가 남편을 속이고 부정을 행하고 음란 방탕하고 수많은 가정이 깨어집니다. 의가 없으면 양심의 등불이 꺼져 있기 때문에 양심의 등불이 꺼진 가정이 올바르게 살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의가 없는 정부는 부패합니다. 여러분 의가 없는데 양심의 등불이 다 꺼지는데 장관이나 차관이나 국장이나 할 것 없이 모든 공무원들이 캄캄한 양심을 가지고 무엇이든지 손에 들어오면 다 포켓에 집어넣는 것입니다. 요사이 늘 신문이나 TV에 보면은 부정부패로 말미암아 잡히고 또 잡히고 또 잡히고 끝없이 잡힙니다. 왜 양심이 등불이 꺼져있는 곳에 아무리 잡아넣어도 어두운 가운데 부패는 계속되는 것입니다. 의가 없는 기업은 부패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있어야지 밝는 양심의 등불이 안 켜진 기업은 어찌하든지 탈세하고 어찌하든지 나라가 망하든 사회가 망하든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부정부패가 기업 속에서 생겨난 것입니다. 오늘날 왜 IMF를 당했습니까? 한국의 대기업이나 중소기업 할 것 없이 모두 다 기업 경영을 부정부패로 했기 때문에 그 부정부패가 결국에는 온 한국을 경제적으로 곤두박질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의가 없는 사회는 부패합니다. 예수가 없이 양심이 없이 꺼진 사회가 여러분 올바르게 행할 수 있습니까? 온 사회가 캄캄한데 명동이 캄캄하고 서울 시내가 캄캄하면 도둑놈도 생기고 온갖 벌레가 생기지 않습니까? 캄캄한 곳에 여러분 밝은 길을 찾아 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의가 발전소라면 양심은 등불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발전소입니다. 양심을 밝히는 등불을 주는 발전소가 바로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개인도 가정에도 정부에도 기업에도 사회에도 분명히 들어와 계셔야 양심의 등불이 대낮처럼 밝아지는 것입니다. 양심의 등불이 밝아지지 않는 이상은 아무리 법을 만들어도 소용이 없고 아무리 형무소를 만들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왜? 어두운 가운데 밝은 일이 생겨 날 수가 없습니다. 양심의 등불은 예수 그리스도가 들어와야 켜지는 것입니다. 디도서 2장 11절로 14절에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 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와 같은 역사는 바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었다가 부활하신 의의 발전소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속에 들어와야만, 그래서 양심의 등불이 환하게 켜져야만 의와 평강과 희락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거룩함과 진실함이 우리의 개인과 가정과 생활, 세계 속에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예수님 없이는 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를 의의 길로 이끌어 주십니다. 의가 있으면 모든 것이 살아납니다. 모든 것이 밝아지는 것입니다. 의와 평강과 희락이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목자가 되시면 우리들의 삶이 희망차고 행복하게 되는데 결국에는 부족함이 없이 주님이 돌봐주는 것입니다. 여호와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IMF를 통해서 우리는 부족 증후군이 마음에 꽉 들어차 불안하고 초조하고 부정적이고 패배의식이 꽉 들어찬 우리에게 이것을 극복하고 우리가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이고 생산적이고 긍정적인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모셔 드려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우리 목자가 되심으로 저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며 내 영혼을 소생시키며 자기 이름을 위하여 우리를 의의 길로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 그리스도가 함께 계셔야 우리의 목자로서 우리 속에 역사해야 비로소 우리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잘 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교육이 이것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정부기관이 이것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율법의 판단이 이것을 이룰 수도 없습니다. 우리의 영혼 속에 거대한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변화는 우리 목자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갈 때 주님께서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 목자 예수 그리스도를 주셔서 우리들을 이 불안 증후군에서 해방시켜 주심을 감사합니다. 주님이 베푸신 십자가 밑 푸른 초장에 아무리 우리를 끌어다 눕혀 놓아도 우리가 그 약속의 풀을 묵상하고 믿고 받아들이고 감사하고 입으로 시인함으로 소유하지 아니하면 우리에게 영양이 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밥상을 차려놓아도 먹지 않는 데에는 별 도리가 없습니다. 오늘 주님께서 우리에게 푸른 초장을 예비하사 우리를 그 밑에 뉘어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 아버지시여 용서와 의의 초장, 성령충만의 초장, 치료와 기쁨의 초장, 축복과 번영의 초장, 영생 복락의 초장이 있으니 이것을 우리가 항상 이 약속의 풀들을 묵상하고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감사하고 신앙으로 우리가 소유할 수 있게 도와 주시옵소서. 그래서 우리가 치료함을 받고 축복을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주님 우리의 목자로서 우리에게 와서 우리를 손잡고 이끌어 주심을 감사합니다. 항상 우리 영혼을 소생시키시는 주님, 오늘도 예배당에 모여 예배 드림으로 모두 다 영혼이 소생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세상이 쉽게 나가고 참된 모든 마음이 소생하고 신앙으로 충만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여 이곳에 있는 모든 성도들의 양심에 등불이 켜지게 도와 주시옵소서. 양심이 꺼지면 온 천지가 캄캄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의의 발전소가 되심으로 주님께서 그를 통하여 우리 양심에 밝은 등불을 켜주시고 양심의 불빛을 따라 사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그래서 우리의 삶이 참으로 축복 받고 영생 복락을 얻는 우리들이 다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신유기도- 야웨 하나님 우리의 선하신 목자 예수님 주께서 몸을 찢고 피를 흘려 값주고 우리를 사주셨습니다. 십자가 밑 푸른 초장을 만드사 그곳에 누워서 치료의 풀을 마음대로 뜯어먹게 만들어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저가 우리 연약한 것을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고 가셨다는 것은 바로 그 치료의 풀이며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나음을 입었다는 것도 치료의 풀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우리가 이 치료의 풀을 묵상하고 우리가 믿습니다. 받아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은 것을 우리가 시인합니다. 우리는 영육간의 모든 병에서 고침을 받았습니다. 치료의 목장에서 우리는 이 은혜를 받아서 모두 다 병을 털어버리고 일어날 수 있음을 감사합니다. 이 약속의 말씀을 믿고 받아들인 모든 성도들에게 주의 치료의 능력이 넘쳐나 주시옵시고 악한 질병을 도말시켜 버려 주시옵시고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놀라운 능력으로 치료하여 주시옵소서. 너희 모든 육신의 질병은 떠나갈지어다. 치료의 목장에서 치료의 풀을 먹은 우리들에게서 너희 모든 질병은 물러갈지어다. 더러운 귀신은 떠나가라. 예수 이름으로 고침을 받을지어다. 고침을 받을지어다. 고침을 받을지어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여 우리는 주님 앞에서 축복의 목장에 드러누워 축복의 풀을 얼마든지 뜯어먹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아브라함의 축복의 풀은 우리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풀도 우리의 것입니다. 아버지 이를 묵상하고 믿고 받아들이고 하나님 앞에 감사드립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여 오늘 우리가 푸른 초장의 축복의 풀을 얼마든지 묵상하고 믿음으로 받아들여서 복을 넘치게 받게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아브라함의 복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넘쳐나서 모든 저주와 가난이 물러가고 남에게 꾸어줄지라도 꾸지 않게 도와 주시옵시고 예수님을 넘치도록 섬길 수 있게 도와 주시옵소서. 야웨 하나님이여 모든 문제를 해결하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넘치도록 채워주시옵소서. 야웨 하나님 우리가 예수 앞에 나왔사오니 우리를 쉴 만한 물가 성령으로 충만케 채워주시옵소서. 성령은 우리의 생수가 되시옵니다. 쉴만한 물가에서 생수를 한없이 마시는 우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성령으로 충만, 충만, 충만하게 해주셔서 모두 다 소생하여 외양간에서 나온 망아지같이 뛰며 즐거워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양심에 대낮같이 밝은 등불이 켜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의 의의 등불이 켜지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