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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9월 26일 제목: 내 아버지 집 성구: 시 23: 6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내 아버지 집”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에덴낙원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아담과 하와가 거할 극히 아름다운 집이었습니다. 거기에는 거할 곳과 정원과 과수원 등 있어야 할 것은 하나도 남김없이 다 갖춰진 그러한 곳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쫓겨난 아담 부부는 이제 자기들이 거할 집을 자기들의 손으로 직접 지어야만 했습니다. 원시 시대에는 토굴의 집도 짓고 나뭇잎이나 풀잎으로 집을 짓고 그 속에서 살았습니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 거할 집이 없다는 것은 불안이요 마음의 슬픔입니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어찌하든지 내 집을 마련하고자 필사적으로 노력을 하고 간절히 소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세상 집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100년도 못되어 우리는 그곳을 영원히 떠나가야만 됩니다. 죽음은 우리의 처소에서 우리를 사정없이 내어 쫓아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 세상 집과 이 세상 살면서 쫓겨난다면 우리는 과연 어디로 가야만 할 것입니까? 성경 누가복음 16장 19절로 31절에 부자와 나사로에 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곳에 부자가 있었는데 항상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웠다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 부자는 자색 옷을 입었다는 것은 권세가 있는 것을 말합니다. 권세 있는 자만이 자색 옷을 입습니다. 고운 베옷을 입었다는 것은 부자라는 것입니다. 이 부자는 좋은 집이 있고 풍부한 물질이 있고 좋은 옷을 입고 쾌락주의를 살면서 온갖 희락을 취했으나 한가지 저 세상에 관해서는 전혀 무관심하고 무식하며 아무런 준비도 하질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가진 것은 지나가는 이 세상의 모르는 것밖에 없고 저 세상에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었습니다. 그 집 대문에 거지 나사로라는 사람이 살았습니다. 그 거지는 집이 없었기 때문에 그 집 대문 밖 처마 밑에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물질이 없어서 부자의 밥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고 살았습니다. 몸이 병들어서 앓고 있으며 헌 데를 개들이 핥아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세상에 아무 것도 안 가졌지만 그의 마음속에 천국 소망과 믿음을 갖고 소망 중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가니 부자도 거지도 똑같이 죽음에 임하게 된 것입니다. 누가복음 16장 22절에 보면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나사로의 죽음은 천대받은 죽음이었습니다. 그는 처마 끝에서 아무도 돌봐주는 사람 없이 온몸이 싸늘하게 식어가면서 목이 말라 허덕였지만 누구 한사람 죽어 가는 그 입에 물 한 방울 떨어 뜨려주는 사람 없었습니다. 외롭게 그는 마지막 호흡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죽고 난 다음에 사람들은 와서 공동묘지에 이름 없이 던져 버리고 파묻었지만 성경은 말하기를 그가 무덤에서 사라졌다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는 천사에 받들려 낙원에 올라가서 아브라함의 품에 안겼다고 말했습니다. 그곳에서는 휘황찬란한 집도 있고 세마포 좋은 옷도 있고 환경적인 행복이 넘쳐나는 곳으로 나사로는 들어갔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 나사로는 이 땅에 살 동안에 아무 것도 없었지만 그가 이 세상을 떠나서 저 세상 갈 때는 또다시 주님께서는 그를 위해서 아름다운 천국을 예비해 놓았고 그 예비한 곳에 그는 들어가서 극락을 누리는 행복한 사람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부자도 역시 세월이 흘러가매 그는 죽었습니다. 굉장한 장례식으로 꽃으로 장식한 상자를 메고 사람들이 구슬픈 노래를 부르면서 갔습니다. 화려한 묘지에 구름 떼 같은 문상객들이 몰려 왔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하기를 부자가 그곳에 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지옥에 떨어져 불꽃 가운데 고민하고 집도 의복도 행복도 다 없는 지옥에서 고민을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말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 주 예수께서 그 말씀을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6장 23절로 26절에 보면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불러 가로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 아브라함이 가로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 이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끼어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할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이 부자는 천년 만년 이 세상에서 영화를 누리고 살 줄 알았습니다만 죽음은 순식간에 그를 아름답고 화려한 집에서 쫓아내 버리고 말았습니다. 부자도 천년만년 남의 집 처마 밑에서 얻어먹고 병을 앓고 고생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죽자 곧 천사가 받들어 그를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해 준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영이시라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라고 한 것처럼 영으로써 육의 장막을 쓰고 살다가 육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영은 영원히 떠나가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몸을 성경은 천막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해가 비추면 뜨겁고 바람이 불면 날리고 날이 추우면 추운 이와 같은 환경의 지배를 받는 천막집인 것입니다. 천막집은 언제고 낡아져서 찢어져 버리고 말 것입니다. 우리의 육신의 장막 집은 반드시 무너집니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본 것입니다. 저 나이아가라 폭포 저 상류에 한 남녀가 보트를 타고 그들은 즐겁게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들은 음식도 많이 먹고 그 다음 술도 잔뜩 마시고 둘이 함께 잠이 들었습니다. 아주 높은 나이아가라 상류지역이기 때문에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들이 잠을 자고 있는 동안에 보트는 점점 물을 따라 나이아가라고 흘러 왔습니다. 그의 나이아가라 폭포로 가까이 왔을 때 변두리에 있는 사람들이 고함을 쳤습니다. 위험하다 잠에서 깨어나라고 아무리 고함을 쳐도 그들은 역시 깊은 잠에 들었다가 보트가 흔들리니까 그때야 잠을 깨보니 이제는 손쓸 수가 없습니다. 쏜살같이 그 보트는 나이아가라 폭포에 떨어졌고 그 남녀는 그대로 죽어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인생이란 이와 같은 시간의 보트를 타고 있습니다. 순식간에 우리들은 그 보트가 마지막 죽음의 절벽에 떨어지는 것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므로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이 세상에 부귀 영화 공명을 누리고 살았다고 해서 영원히 그것을 누리는 것도 아니고 이 세상에 헐벗고 굶주리고 가난하고 고통 당한다고 해서 영원히 그것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 속에 천국이나 지옥을 알고 천국을 준비하고 있지 아니하면 언제고 우리는 천국의 영광을 잃어버리고 영원한 지옥으로 거꾸러지고 떨어져 갈 수밖에 없다는 이 사실을 주님께서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영원히 있을 곳을 주기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무엇 때문에 하늘 보좌 버리시고 인간의 육신을 쓰시고 이 땅에 오시겠습니까? 우리 인생들이 취해야 할 천국이 있고 피해야 될 지옥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천국이 너무나 영화롭고 아름답고 지옥이 너무나 무섭고 고통스러운 곳이기 때문에 주님은 우리 사람들에게 지옥을 경고하고 지옥에 가지 말고 구원을 받아 천국에 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절로 3절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죽음보다도 더 무서운 것은 죽음의 강을 건너 후 있을 곳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육신의 장막 집을 떠날 때 있을 곳이 없습니다. 갈 곳이 없습니다. 버림받은 인생이 되고 잃어버린 인생이 되었다는 이것이 더 무서운 것입니다. 죽고 난 다음에 저 건너편 강 언덕에 아름다운 땅이 있도다 믿음으로 그곳에 가겠네 황금 집 아름답고 영화로운 곳이 있는 것을 안다면 죽음이 그렇게 두려울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죽고 난 다음에 갈 곳이 없고 버림받아 버리고 하나님도 없고 삶도 없는 곳에 내동댕이친 이것이 가장 무서운 것입니다. 칠흙같이 어두운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이 얼마나 비참한 일이겠습니까? 베드로후서 2장 17절에는 “이 사람들은 물 없는 샘이요 광풍에 밀려가는 안개니 저희를 위하여 캄캄한 어두움이 예비되어 있나니”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빛이란 조금도 없고 온 천지를 봐도 캄캄함만 있는 이것 얼마나 비극적인 것입니까? 마태복음 25장 30절에는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어두운 곳에 떨어져서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그는 슬피 통곡하여 가슴을 두들기고 파며 울고 이를 간다고 했습니다. 괴롭지 않은데 왜 이를 갈겠습니까? 너무나 고통스럽기 때문에 이를 부득부득 가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3장 42절에는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여러분 시골에 가면 대장장이가 풀무불을 밀었다 당겼다하면 바람이 불어서 불이 활활 타는데 쇠를 달구는 것입니다. 그처럼 끊임없이 불이 활활 타는 그 너무나 무섭고 뜨거운 풀무불에 던지움을 받을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께서는 이것을 다 우리가 피하고 우리에게 영원히 살 수 있는 아름다운 아버지 집으로 가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우리를 위해서 예비하신 너무나 아름다운 집에 우리가 가기를 원한 것입니다. 이 처소에 예수님이 가셔서 모두 아름다운 것으로 우리를 위해서 예비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우리 아버지의 집으로 가는 길을 모릅니다. 아담과 하와 이후 에덴에서 쫓겨난 그때로부터 시작해서 길 잃어버린 자가 되었으며 잃어버린 자가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 세상 자랑만 따라서 살고 땅만 바라보고 흙만 파고 살았으니 천국 가는 길을 우리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런데 천국 가는 길을 아무리 찾으려고 해도 죄악과 죽음의 깊은 계곡이 있는데 그 죄악의 계곡, 죽음의 깊은 계곡을 지나서 천국까지 갈 사람이 없습니다. 거기에 떨어진 사람은 모두다 멸망을 당하고 말지 살아서 나온 사람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몸을 찢고 피를 흘려서 우리의 죄악을 속하시고 죽어서 음부에 내려갔다가 사흘만에 부활하심으로 죄악과 죽음의 계곡을 친히 메우시고 우리가 건너갈 길이 되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죄악과 죽음의 계곡을 건너가는 길입니다. 예수님을 떠나서는 이 계곡을 건너갈 길이라고는 하나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고 말했으며 베드로는 천하인간에게 구원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적이 없느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리스도라는 이 길을 우리가 저버리면 우리는 죄악의 계곡, 죽음의 계곡에 영원히 떨어져서 멸망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여러분과 나에게 길이 되어 주셔서 그를 통해서 우리는 멸망을 벗어나고 영원한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게 만들기 위해서 오시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남녀 노유 빈부 귀천 할 것 없이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이 스스로는 절대로 천국에 올라갈 수 없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오직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는 길을 예비해 놓은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나는 지식이 없어서 구원을 못 받았다. 종교적인 의식과 형식을 집행하지 못해서 구원을 못 얻었다는 이런 말은 할 수 없습니다. 이제 누구든지 예수를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믿기만 하면 그 믿음을 통해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천국까지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고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부지런히 예배드리고 주님을 섬기고 충성을 다하는 것은 이제 예수 믿고 이 땅에서 우리가 한만큼 주님 나라에 재료를 올려주면 그 재료를 가지고 주님께서 우리를 위한 아름다운 집을 예비하시는 것입니다. 주께서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간다고 말했습니다. 다 준비해 놓지 예비합니까? 여러분 천당에 올라가면 우리의 거할 처소가 다 다릅니다. 영광스러운 처소가 있고 그리고 평범한 처소가 있습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주를 위해서 우리가 힘쓰고 애써서 일한 만큼 그 재료가 하늘에 올라가서 이 재료를 가지고 우리의 집을 아름답게 꾸미는 것입니다. 내장공사가 다 끝나면 하나둘 불러오시는 것입니다. 제가 대전에서 집회할 때 목사님이 저보고 그럽니다. 우리 교회에 계신 장로님 한 분이 이 교회를 짓는데 너무너무 불협조를 하고 굉장히 돈은 많은데 헌금은 별로 안 내고 교회를 짓다가 말고 우리는 중도에서 고생을 하고 있었는데 이 장로님이 갑자기 심장마비로 죽었습니다. 그래서 그 시체를 두고 자녀들이 다 통곡을 하고 울고 있었는데 이 죽은 시체가 살아났습니다. 이 영감님이 살아나자 말자 자녀들을 보고 고함 고함을 쳤습니다. 내게 있는 건물 다 팔아라 땅도 다 팔아라 모두 다 팔아서 당장 교회를 지어라 아들들이 다 어리둥절했습니다. 그러자 그 죽었다 깨어난 아버지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내가 죽어서 천사에 받들려 천국에 가니 과연 천국은 아름답다 천국으로 가는 길을 천사에게 받들려서 가는데 그 길을 가면서 별들을 구경하면서 갔다. 그 천국에 들어가니까 주님께서 반갑게 맞아 주셨는데 내 집을 구경하라고 해서 가니 굉장히 좋은 집들이 많이 있는데 우리 교회에서 매일 아침 교회 바닥을 쓸고 청소하던 과부할머니 집도 있는데 지나가 보니 굉장히 집이 좋더라 이 할머니 집이 이렇게 좋은데 내 집은 어마어마하겠다고 생각하고 지나가 보니 내 집은 점점 집이 적어지더라 그래서 천사를 보고 길을 잘못 들어서지 않았습니까? 우리 교회에서 교회당 쓸던 할머니 집이 저렇게 좋은데 자꾸 집이 적어지는 것 보니까 나는 그 할머니 보다 계급도 높고 장로였는데 집이 적어지는 것은 어떻게 된 겁니까? 길을 잘못 들었지요? 잔소리 말고 따라 오라 그래서 따라가니까 구석에 오두막살이 같은 집이 있습니다. 이것이 너의 집이다. 내 집이 왜 이렇게 작습니까? 너는 세상에 살 동안 장로이고 하나님이 복을 주어서 물질도 많이 가지고 있었는데 너는 하나님께 한 일이 없다 그러나 이 과부는 자기에게 있는 모든 것을 다 바치고 새벽기도마다 일어나서 불을 피우고 그리고 교회 청소를 했고 그 공로가 올라와서 이렇게 좋은 집을 짓게 되고 너는 공로가 없다. 그러므로 이 오두막살이에서 영원히 살아야 한다. 그래서 그가 천사의 옷자락을 잡고 나 한번만 세상에 내려보내 주시면 내가 정말 교회를 멋있게 지어 놓고 하나님 사업을 많이 하고 오겠으니까 나 한번만 기회를 달라고 그냥 울부짖고 외치니까 주님께서 그래 그럼 네가 약속한대로 가서 교회를 짓고 모든 하나님의 사업을 이루고 오너라 그래서 깨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때 그 교회 목회하던 목사님이 고 목사님이었는데 고 목사님이 이 할아버지 죽었다 깨어남으로 우리 교회는 살았습니다. 그 재산 다 팔아 교회 다 짓고 아름다운 교회를 만들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땅에서 주를 위해서 수고하는 것은 주님께서 갚아 줍니다. 주께서 말하기를 부비가 더 들면 내가 올 때 갚아 주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의 길이 되셔서 천당에 올라가는 것은 다 올라가지만 천국에 올라가서 우리가 누릴 영원한 영광은 이 땅에서 주를 위해서 얼마나 희생하고 잃었는가 이것이 재료가 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말하기를 과연 죽고 난 다음에 천당이 있을 것이냐? 여러분 사도 바울 선생은 자기가 직접 체험한 천국에 대해서 뚜렷하게 간증을 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5장 1절에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라고 했습니다. 이 땅에서 우리가 살던 집 육신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손으로 짓지 않은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을 안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바울 선생은 체험을 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가 루스트라에서 복음을 증거하다가 원수들의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원수들이 그를 질질 끌어서 거름 무더기에 내어 던져 버렸는데 제자들이 둘러서서 기도할 때에 그는 살아났었습니다. 그는 그 동안에 천국에 올라갔다 내려온 놀라운 체험을 한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2장 1절로 4절에 보면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 사년 전에 그가 세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그가 천국에 올라갔는데 너무나 뚜렷하기 때문에 몸으로 올라갔는지 몸을 벗어버리고 영혼이 올라갔는지 구분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몸 안에 있었는지 몸밖에 있었는지 그는 구분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뚜렷하게 셋째 하늘에 올라가서 낙원에서 도저히 사람의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그 아름다운 장관을 보고 말을 들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런 체험을 한 바울 선생은 남은 여생을 언제나 천국을 그리워하면서 살았습니다. 차라리 이 몸을 떠나 주님과 함께 있을 것이 훨씬 좋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빌립보서 1장 21절로 23절에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가릴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 땅에 살면 더 많은 주의 사업을 하고 많은 성도를 도와줄 수 있으니 좋고 떠나면 내가 주님과 직접 함께 거하니 더 좋을 것이기 때문에 차라리 둘 사이에 끼어서 고민할 때에 몸을 떠나 주님과 함께 사는 것이 좋다고 그는 말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 선생과 우리하고는 너무나 틀리지 않습니까? 세상 사람말로 개똥에 굴러도 세상에 사는 것이 좋다. 그것은 하늘나라에 대한 조금의 영광도 보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베드로도 그는 육신의 장막 집을 떠날 날이 쉬이 가까워 왔다고 해서 죽음의 날을 슬프게 생각하지 않고 기대를 잔뜩 가지고 말했습니다. 베드로 후서 1장 12절로 14절에 “이러므로 너희가 이것을 알고 이미 있는 진리에 섰으나 내가 항상 너희로 생각하게 하려 하노라 내가 이 장막에 있을 동안에 너희를 일깨워 생각하게 함이 옳은 줄로 여기노니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지시하신 것같이 나도 이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을 앎이라” 이 장막을 나도 이제 벗어나서 떠나갈 날이 임박하다고 베드로는 말함으로 이 땅에 영원히 살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히 증언한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밧모섬에 유배 갔을 때에 주일날 기도하다가 성령으로 감동되어서 아름다운 천국을 그는 보았습니다. 그는 요한계시록 21장 1절로 7절에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주님께서 얼마나 아름다운 장면을 밧모섬에서 요한에게 보여 주셨습니까? 그가 본 것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저주가 비 같이 흐르고 전쟁과 전쟁 소문이 나고 전쟁과 기근이 일어나고 고통과 죄악이 꽉 들어찬 이 낡은 땅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열렬한 불로써 하늘과 땅을 불태워 새롭게 지어서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것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위에서 새 예루살렘이 내려옵니다. 새 예루살렘이 달처럼 이 우주공간에 떠 있는데 그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신부가 남편을 위해서 단장한 것 같더라. 여러분 우리는 대개 다 여인을 아름답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여인이 언제 가장 아름다우냐 시집가는 날 최선을 다해서 아름답게 꾸미는 것입니다. 저는 항상 주례를 많이 하기 때문에 아름답고 예쁜 신부들을 제일 많이 봅니다. 그런데 주례를 하면서도 가만히 보면 어떤 신부든지 결혼하는 날 예쁘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그렇게 정성을 다하여 아름답게 꾸미고 흰 면사포를 쓰면 천사와 같습니다. 여기에 요한이 새 예루살렘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너무나 아름다워서 다른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요. 신부가 남편을 위해서 단장한 것과 같이 그렇게 아름답더라고 말한 것입니다. 바로 그곳에 예수님과 부활한 성도들이 들어가 영원히 살 집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새 하늘과 새 땅, 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을 주님이 지으시고 육으로 살아 남은 유대인들, 야곱의 후손들은 육으로서 이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번성하고 번성하며 살아나갈 것입니다. 그들이 인구가 많아지면 얼마든지 우주로 우주로 옮겨 갈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주의 날이 도적같이 다가올 것이라고 베드로는 말했습니다. 베드로후서 3장 10절로 13절에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여러분 대만에 지진 오는 것을 보십시오 새벽잠을 깊이 자고 있는데 갑자기 천지를 진동하는 지진이 와서 순식간에 수천 명의 사상자가 생겨나고 나라 경제가 흔들거립니다. 뭐 불가항력적인 힘인 것입니다. 조그마한 지진이 다가와도 한 나라 전체 경제가 거꾸러지는데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땅이 열렬한 불에 녹을 때 그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피할 자가 이 땅에 누가 있겠습니까? 아무도 피할 날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잠에서 깨어나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고 경건하게 살며 이 땅에 행인과 나그네같이 살다가 주님 오실 날에 주여 내가 여기에 있나이다 그대로 주님께 들려 올림을 받아야 될 것입니다. 우리가 들어 갈 곳은 새 예루살렘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도성이 바로 새 예루살렘인 것입니다. 이곳에서 예수님의 신부들이 함께 주님과 거하는 것입니다. 성안에는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전능하신 하나님과 그 어린양이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신부가 남편을 위해서 단장한 것과 같이 아름다운 그곳에 하나님께서 친히 다스려주십니다. 하나님은 생명의 원천이요 근원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다스리는 곳에는 눈물이 없습니다. 사망이 없습니다. 애통하는 것이 없습니다. 곡하는 것이 없습니다. 아픈 것이 없습니다. 그대신 무엇이 있습니까? 생명수 샘물로 넘치게 하심으로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흐르는 이 생명 강에서 우리는 목욕하고 생명이 넘치게 될 것이고 생명강 양편에 열두 가지 열매를 맺는 수많은 과일나무들이 있습니다. 그 과일을 먹으면 온 영혼 속에 생명과 기쁨과 소망이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잎사귀만 하더라도 새 하늘과 새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던져 주면 그것이 만국을 소성케 하는 그와 같은 생명의 원천이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에게는 생명이 넘치는 삶을 하나님께서 주실 것입니다. 요한게시록 22장 1절로 4절에 보면 “또 저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 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 다시는 밤이 없고 주 하나님이 빛이 되시는 것이고 우리는 주와 함께 세세토록 왕 노릇하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 23절에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데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고 어린양이 그 등이 되심이라” 밤이 없어요 하나님이 바로 빛이고 예수님이 바로 빛이 되시는 것입니다. 다시 밤이 없고 등불과 햇빛이 쓸 때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비추고 우리는 주님과 함께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한다. 그것은 생명이 넘쳐 남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 성장하는 수많은 육의 선민들을 우리가 돌보고 다스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목자 되신 예수님을 선하시고 인자하신 손길로 평생토록 우리를 돌봐주시고 종국에는 우리 아버지 집으로 인도하사 그곳에서 영원히 거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곳은 진실로 기쁨이 항상 넘치는 곳이요 앞서간 성도들을 다 만나서 얼싸안고 기뻐 뛰며 즐거워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죽을 때 슬피 우는 것은 그들은 다시 만나지 못하지만은 우리는 주님께서 오실 때 다 데리고 오십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는 천국 문에서 다 함께 만나기 때문에 잠시 동안 이별하나 영원한 이별은 되지 않는 것입니다.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소망 없는 사람들은 주를 믿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소망이 없어요. 자기 스스로도 소망이 없고 먼저 간 사람들을 만날 소망도 없어요. 그러나 우리는 먼저 주를 믿고 간 사람을 주님이 함께 데리고 있다고 함께 데리고 오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올라가고 위에서는 주님이 데려오고 우리는 전부다 할렐루야를 부르며 고함치고 서로 얼싸안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주와 함께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 땅에서 우리가 거하는 집은 아무리 호사스럽고 아름다워도 100년이 되지 못하여 다 버리고 떠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아름답고 예쁜 청춘도 100년이 되면 다 무너진 장막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손으로 짓지 않는 영원한 집을 하나님께서 친히 예비하사 우리를 위해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누구를 불구하고 부자든 거지든 할 것 없이 몇 일 후 몇 일 후 우리는 이 땅을 떠나게 될 것입니다. 그날에 영원한 좌절과 절망과 슬픔으로 부르짖으며 지옥에 떨어지지 말고 할렐루야 고함치며 찬양과 영광으로 하룻길 되는 저 천국으로 들어가서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사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 우리 주님의 은총과 사랑을 생각할 때 정말 눈물겹게 감사합니다. 우리가 무엇이관대 구더기처럼 진흙에 꿈틀되는 우리들을 부르시사 거듭나 신령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고 예수의 다리를 건너서 저 죄악의 계곡, 험한 죽음의 계곡을 건너질러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해 주셨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사망아 너희의 이기는 것이 어디에 있느냐 사망아 너희 쏘는 것이 어디에 있느냐고 사망을 질타한 바도 사울처럼 우리도 죽음이 겁나지 않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언제고 죽음이 우리의 육신의 장막 집을 다 찢어버리면 우리는 다 홀가분하게 영원한 천국으로 들어가게 되었으니 감사드립니다. 아버지 오늘 설교를 들은 모든 성도들 이중에 한 사람도 영생의 길을 잃어버리는 사람 없게 하여 주시옵시고 아버지가 예비한 천국에 다 들어가게 하여 주시옵시고 이 땅에 사는 동안 주를 위하여 열심히 일하여 많은 좋은 재료를 천국으로 많이 올려드려 아름다운 집이 이루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