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1999년 10월 3일 제목: 절대 긍정의 삶 성구: 롬 8: 28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절대 긍정의 삶”이란 제목을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어떠한 환경에도 긍정적이고 희망찬 내일을 기대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요? 세상이 하도 요란하고 변화무쌍한지라 이 세상을 바라보고 살 때는 너나 할 것 없이 항상 마음이 요동하고 불안합니다. 최근에 터키에서, 그리스에서, 대만에서 멕시코에서 일어난 지진은 우리가 의지하고 살고 있는 땅조차 이제 믿을 수 없음을 느끼게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디에서 삶의 환경에 관계없이 절대 긍정적인 삶을 얻을 수가 있겠습니까? 오늘 읽은 이 말씀은 우리의 질문에 대한 확실한 대답을 주고 있습니다. 첫째로, 성경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절대 긍정적인 삶을 얻고 살아갈 수 있는 토대가 이루어진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왜 하나님을 사랑해야만 하나요? 이 세상에 우리의 사랑을 요구하는 것이 너무나 많은데 천지와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도 우리의 사랑을 원하시나요? 우리가 왜 하나님을 사랑해야 될까요? 여러분 자녀들은 부모를 사랑하는 것이 힘들지 않습니다. 부모가 나를 낳아서 길러주셨기 때문에 당연지사로 부모에 대한 사랑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셨기 때문에 지어주신 우리 하나님에 대한 당연한 사랑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흙을 취하여 사람의 형상을 만드시고 생기를 불어넣어서 생령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아담의 후예인 우리들은 언제나 하나님의 손으로 지으심을 받은 것을 생각하고 지음을 받은 자가 지은 자를 경외하고 사랑하는 것은 마땅한 일인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해야 될 것은 하나님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죄지은 우리를 구원하여 주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 이후에 모든 인생들은 모두 다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 하나님을 반역하고 배신했습니다. 오늘날도 온 세계가 악한 자의 손에 있으며 하나님을 배신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경외치 아니하고 찬양도 아니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한복음 3장 16절에 보시다시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일방적으로 우리를 사랑해 주셨고 사랑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언제 독생자를 달라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언제 우리를 구원해 달라고 외치지도 않았는데 일방적으로 하나님께서 그 독생자를 보내셔서 그를 십자가에 못 박아 몸을 찢고 피를 흘리기까지 하시면서 우리의 죄가를 다 청산하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우리가 가슴속에 우리가 느끼고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이야기를 읽어 본 적이 있습니다. 시카고에 사는 어떤 샐러리맨이 보트가 가지고 싶어서 얼마씩 얼마씩 저축한 돈으로 보트 재료를 사서 그것으로서 시간이 있을 때마다 집 뜰에서 망치로 뚝딱거려서 아름다운 보트를 만들었습니다. 그는 그것을 시카고 호수에 띄워 놓았습니다. 어찌나 아름답고 좋은 보트인지 마음이 감격되었습니다. 그 보트를 단단히 묶어 놓고 잠을 자는데 그 날따라 큰 폭풍이 다가왔습니다. 밤새도록 세찬 바람이 불고 심한 물결이 쳤는데 아침에 보트 주차소에 가보니깐 보트가 온데 간데 없습니다. 풍랑에 그만 줄이 끊어지고 떠내려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는 마음이 슬프고 고통스러웠습니다. 혹시나 보트를 주은 사람이 있는가 싶어서 시간만 있으면 오후 시간에 이리저리 다니며 찾아보았습니다. 나중에 낡은 보트를 파는 시장에 가보니까 자기 보트가 거기에 있습니다. 그 주인에게 이것은 내 것이라고 아무리 주장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또다시 있는 힘을 다해서 돈을 모아 가지고서 자기가 만들었다가 잃어버린 그 보트를 사서 집으로 끌고 오면서 혼자 이렇게 중얼거렸다고 했습니다. 이 보트야 너는 내가 만들었으니 내 것이고 잃어버렸다가 내가 돈 주고 또 샀으니 이중으로 너는 내 것이다. 그러므로 너 보트는 내게 굉장히 귀중하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마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음성을 듣는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은 왜 우리를 사랑하십니까? 우리를 만드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또 우리를 잃어 버렸다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배로운 피로 값주고 사셨으니 우리는 이중으로 하나님의 소유가 된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고 또 사랑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가 받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마땅히 사랑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천국을 예비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 떠나서 이제는 세상에 가진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렸을 때, 저 죽음의 강을 건널 때 우리 주 예수를 통해서 하나님을 천국에 영접해 주시고 우리를 위해서 영원한 처소 아름다운 처소 극히 귀한 처소를 예비하고 계시니 이 어찌 하나님께 감사하지 아니할 수 있겠습니까? 마태복음 22장 37절로 38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이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돈이나 지위나 명예나 권세나 세상 쾌락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과연 나는 지금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느냐 그것을 우리 한번 물어 보십시다. 하나님은 이처럼 나를 사랑하여 주시고 계시는데 내가 과연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는지 스스로 질문을 해 봐야 될 것입니다. 여러분 사랑하는 증거가 어디에 있습니까? 사랑은 항상 함께 있기를 원합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는 늘 자식하고 같이 있기를 원합니다. 자식이 장성해서 나갔을지라도 부모의 마음에는 늘 자식이 있습니다. 왜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친구는 늘 잊지 않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부부간에도 뜨겁게 사랑할 때는 하루 종일 그 머리 속에 부부간에 서로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손은 일을 하고 있고 마음은 바쁠지라도 머리 속에는 항상 사랑하는 대상을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은 이 세상에 아무리 바쁠지라도 머리 속에는 항상 하나님이 그곳에 거하여 계셔야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일한다고 하나님을 깜빡 잊어 버리고 세상 재미있다고 깜빡 잊어버리고 세상에 논다고 하나님을 깜빡 잊어버리고 내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있었네 그렇게 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고 있지 않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 뜨겁게 사랑하는 사람은 아무리 바쁘고 수고로워도 머리 속에는 언제나 사랑하는 대상을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언제나 하나님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어릴 때에 어머님이 부엌에서 밥 지었을 때 따라가서 밥 짓는데 여러 가지 날라주고 불도 때주고 했습니다. 우리 부엌하고 안방이 상당히 거리가 먼데도 어머니는 갑자기 “네 동생이 깼으니 동생에게 젖먹이고 올께 단단히 불조심해라” “어머니 동생 깬 소리가 안들리는데요” “아니야 울고 있어” 어머니는 상당히 부엌에서 멀리 있는 우리 동생의 깨어나서 울고 있는 것을 듣고 젖 먹이려고 뛰어 가셨습니다. 그것은 왜냐 어머니 마음속에는 늘 그 사랑하는 자녀에 대한 생각이 꽉 들어차 있기 때문에 자녀의 울음소리도 멀리서 들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우리의 머리 속에 늘 하나님이 기억되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항상 무슨 일을 하더라고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는 생각이 우리 마음을 점령하고 있어야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 과연 여러분이 하룻 동안 깨어 사는 동안에 늘 마음속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예수님의 생각이 떠나지 않고 있는지 없는지 한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만일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한 생각이 깜빡 잊어버리고 있다면 여러분은 상당히 사랑에 병이 들은 것입니다. 여러분 스스로를 검진하고 회개하고 돌아서야 될 것입니다. 또 사랑은 사랑하는 상대를 섬기고자 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을 섬기지요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에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이며 손발이 다 닳도록 수고합니다. 그러고도 수고의 대가를 원하지 않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섬기는 것입니다. 아내가 남편을 사랑하면 남편을 위해서 애쓰고 힘쓰고 수고하고 그리고 자랑하지 않습니다. 또한 남편도 한가지입니다. 아내를 사랑하면 아내를 위해서 많은 일을 하고도 자랑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즐겁게 여기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을 위해서 사랑의 수고를 하는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나는 교회에 오면 우리 남녀 선교회의 회원들이 혹은 교통정리를 하고 밖에서 안내를 하고 또 하루종일 서서 다리가 통통 붓도록 하나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아무도 자랑하지 않습니다. 내가 이렇게 했다고 알아 달라고 하지 않습니다. 사랑의 수고를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일이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아니하면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을 섬기는 데에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세상의 유혹을 뿌리치고 성수주일하고 어떠한 유혹이 있을지라도 수입의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려서 감사하고 그리고 봉사의 수고를 마다하지 않을 것입니다. 말라기 3장 10절로 11절을 보면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요번 태풍이 불어서 많은 논이 쓰러졌습니다. 여러분 아무리 1년 농사 애쓰게 지어도 태풍이 불어와서 모든 논밭의 곡식을 다 쓰러뜨리면 수고한 것이 헛되고 맙니다. 곧 물에 젖은 곡식은 싹이 나 버리고 못 먹게 되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수고하여 애를 써도 하나님이 지켜 주셔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후도 지켜주시고 병충해에서 지켜주셔야만 올바른 수확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리고 성수주일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살아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를 보이면 하나님은 말합니다. 나는 나를 사랑하는 자를 내가 사랑한다고 그렇게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 물질 있는 곳에 너희 마음도 있다고 하셨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시간드려 물질드려 몸드려 수고하며 섬겨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또 사랑은 사랑하는 상대를 항상 기뻐하고 찬양하며 자랑하게 됩니다. 여러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때 얼마나 기쁩니까? 요번 추석때 자녀들이 시골에 부모를 만나러 가니 부모님이 얼마나 기뻐합니까? 왜 사랑하기 때문에, 친구들도 사랑하는 친구를 만나면 얼마나 상대로 인하여 기뻐합니까? 왜냐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마음에 기쁨이 넘쳐야 됩니다. 우리가 교회에 나오는 것이 기뻐서 마음이 흥분되어야 합니다. 왜 하나님을 만나러 가기 때문인 것입니다. 예배 드리러 갈 때 즐거움이 넘쳐야 됩니다. 왜 하나님을 만나러 가기 때문인 것입니다. 억지로 하고 의무로 하면 거기에는 사랑이 들어 있지 않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대상을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자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 100편 3절로 4절에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이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항상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나님이 모든 일에 우리를 붙들어 주심으로 긍정적으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성경은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 하나님과 함께 하고 하나님이 언제나 긍정적으로 붙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모의 뜻에 순종하는 자녀는 부모의 사랑과 복을 받으며 남편의 뜻을 따르는 아내는 남편의 사랑과 귀여움을 받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하나님이 우리를 기뻐하시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하나님을 반역하고 하나님과 씨름하게 되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사랑할 수가 없지 않습니까?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반적인 뜻은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절로 18절에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 쉬지 말고 기도하라 !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일반적인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다 생활에 실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뻐할 수 없는 것도 늘 기뻐하고 늘 크고 적은 일을 항상 하나님께 기도하고 좋은 일에도 감사하고 나쁜 일에도 감사하고 모든 것을 합쳐서 감사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전 순복음교회 목사인 우리 김석산 목사님이 예배를 인도하고 계단에 내려오다가 넘어져서 발목이 부러졌습니다. 그래서 발목 기부스를 했습니다. 기부스를 하고 난 다음에 강단에서 설교를 하니까 불편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다리가 아파서 그냥 서서 설교 못하니까 걸상을 놓고 앉아서 설교합니다. 그러니 이 교인들이 볼 때 주의 종이 왜 그렇게 다리를 다쳐서 저렇게 앉아서 설교를 하느냐 마음에 하나님 이러한 일에 무엇을 감사하라는 말입니까?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는데 내가 다리가 부러져서 걸상을 놓고 앉아서 설교를 하는데 이것도 감사할 것입니까? 그렇게 물었다는 것입니다. “감사해라, 목 안 부러진 것만 해도 얼마나 감사하냐?” 그때 깨달았습니다. “아이고 하나님, 계단에 넘어져서 목이 부러졌으면 영원히 앉은뱅이가 되었을 것인데, 다리 발목만 부러진 것만 해도 너무나 감사합니다.” 우리가 자꾸 위를 쳐다보니 감사하지 않지 밑을 내려다보고 살면 감사할 일이 너무나 많은 것입니다. 나보다 형편이 어렵고 고달픈 사람이 얼마나 많지 않습니까? 우리 하나님께서 어떠한 사람을 기뻐하시느냐! 항상 마음에 기쁨을 가지는 사람인 것입니다. 여러분 다른 것 다 제켜 놓고라도 예수님이 우리의 구주가 된 것을 생각할 때 기뻐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이 멸망 받을 세상에서 구원을 받아 영원 천국에 가게 되었으니 이것만 생각해도 안 기뻐할 수가 없지요. 그리고 늘 크고 작은 것을 하나님께 기도하라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듣고 도와주기를 원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아도 우리가 나중에 먼 눈으로 바라볼 때는 그것이 나중에 좋을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하나님은 영원을 두고 계획하는 것이기 때문에 현재 입에 단 것만 주지 않습니다. 입에 쓴 것을 줌으로 장차 좋아질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고통과 괴로움도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입에 단 것만 가지고 감사하지 말고 입에 쓴 것도 가지고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믿고 감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특별하신 뜻을 알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공부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시편 119편 105절로 107절에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주의 의로운 규례를 지키기로 맹세하고 굳게 정하였나이다 나의 고난이 막심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나를 소성케 하소서”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이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 되어서 어두움을 밝혀 주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리면 늘 정규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고 있으면 성령이 나중에 내가 어떻게 할지 모를 때는 그 말씀을 우리 마음속에 기억나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말씀의 창고에 말씀을 채워 넣어야 성령이 구약과 신약에서 그 말씀을 끌어내어서 기억나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특별한 뜻을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평소에 늘 열심히 읽고 듣고 공부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기도 중에 깨달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이냐 저것이냐 알지 못해서 주님께 간절히 기도하고 있으면 갑자기 마음속에 깨달음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시편 143편 3절로 4절에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나를 가르쳐 주의 뜻을 행케 하소서 주의 신이 선하시니 나를 공평한 땅에 인도하소서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인하여 나를 살리시고 주의 의로 내 영혼을 환난에서 끌어내소서” 이와 같이 기도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의 마음속에 갑자기 우리가 기도하면 깨닫게 해 주십니다. 밝은 대낮같이 환하게 선악을 분별할 수 있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꿈이나 환상을 통하여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보여 줄 때가 있는데 그것은 극히 드문 일입니다. 평범하게 일반 사람에게 늘 주는 것은 아니지요. 요엘서 2장 28절에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라고 했는데 특별한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꿈과 환상을 통하여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보여 주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빌립보서 2장 13절에 있는 말씀대로 마음에 소원을 주시고 행하시는 것입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우리에게 소원으로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갑자기 계속해서 소원이 일어 납니다. 누구를 심방하라. 소원이 일어납니다. 누구를 만나라. 소원이 일어납니다. 이것을 하라. 기도할 때 자꾸 소원이 일어납니다. 이런 소원을 통해서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보여 줄 때가 많이 있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기도할 때 마음에 소원을 통하여 하나님의 분명한 뜻을 보여 주실 때가 많이 있습니다. 내가 아무리 가려고 해도 하나님이 그 길을 막으시고 내가 생각지 않은 길을 열어 놓습니다. 내가 또 생각지 않은 사람을 만나서 그 사람의 인도를 받게 됩니다. 이처럼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환경에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환경을 통하여 인도할 때가 많습니다. 평범한 예수 믿는 성도들에게는 여러분 우리가 기도를 할 때 마음에 소원을 통하든지 우리 주위 환경에 변화를 통해서 우리에게 하나님이 깨달음을 허락하여 주셔서 이 길로 가라 하나님의 뜻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우리들은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늘 노력을 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5장 15절로 17절에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기 위해서 평소에 우리가 늘 애쓰고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을 따라서 사는 이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다가오는 좋은 체험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좋은 것은 항상 좋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다가오는 나쁜 것들조차도 합력하여 선이 된다는 것을 하나님이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나쁜 것은 무엇일까요? 병드는 것과 학교에 낙방하는 것과 직업을 잃는 것과 사업에 실패하는 것과 승진에 누락되는 것과, 재물에 손해를 보는 것 등 이러한 여러 가지 나쁜 일들이 다가오게 될 때 그로 말미암아 낙심해서는 안됩니다. 내가 서대문에서 목회할 때 우리 한국에 저명한 문학가의 딸이 결혼 약속을 했다가 파혼이 되었어요. 너무나 좌절하고 절망하고 그는 내 앞에 와서 흐느껴 울면서 목사님 이럴 수가 있습니까? 약혼을 해 놓고 일방적으로 파혼하는 법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래서 내가 그 자매님에게 말했습니다. “자매님, 자매님은 평소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주님 뜻을 따라 살려고 무척 애를 쓰는 삶을 살지 않았습니까? 너무 눈 앞에 일만 보고서 슬퍼하지 마십시오. 이 남자하고 당신 결혼해서 훗날에 굉장한 불행이 다가올지 어떻게 압니까? 하나님이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이 남자와 파혼되도록 한 줄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에게 모든 것이 합당하여 선을 이루는 것임으로 이 남자와 파혼된 것이 훗날에는 굉장히 선한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낙심하지 마십시오”라고 기도를 해 주었는데, 그 다음에 다시 좋은 남자를 만났는데 전보다도 훨씬 좋은 사람 만났습니다. 제가 그 결혼식을 주례했는데 전보다도 10배나 더 좋은 남자입니다. 공부도 많이 하고 착하고 신앙도 좋은 남자입니다. 결혼해서 그 다음 이후로 얼마나 아들 딸 낳고 잘 사는지 모릅니다. 합력하여 유익을 이룬 것입니다. 우리가 진실로 내 주위에 안됐다고 탄식하지 마십시오. 예수 안 믿는 사람은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우리 손에 잡고 섭리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입니다. 신명기 4장 30절로 31절에 “이 모든 일이 네게 임하여 환난을 당하다가 끝날에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그 말씀을 청종하리니 네 하나님 여호와는 자비하신 하나님이심이라 그가 너를 버리지 아니하시며 너를 멸하지 아니하시며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잊지 아니하시리라” 우리가 환난을 당하나 우리가 하나님께 의지하고 있으면 주님께서 언제나 끝이 좋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협력하여 선을 이루는 섭리를 우리가 늘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려고 애쓰는 사람은 눈을 들어 멀리 바라보고 희망과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현실을 탄식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전도서 7장 13절로 14절에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을 보라 하나님이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하나님이 이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사 사람으로 그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이러므로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며 모든 것을 합동하여 유익하게 해 주실 하나님을 생각하고 오히려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할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수를 놓듯이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손으로 수를 놓는데 그 뒤를 보십시오. 빨간실, 파란실, 노란실이 얼키고 형편 없습니다. 저런 것이 무슨 수가 되겠느냐? 그러나 수를 마치고 돌려놓으면 그것에는 아름다운 화초가 피어 있고 물이 흐르고 새들은 노래하고 나비가 날아가는 아름다운 그림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섭리할 때에 노란실, 파란실, 검은실, 흰실이 왔다 갔다하고 좋은 일 나쁜 일 궂은 일 슬픈 일 고통스러운 일이 얼키고 설키는 것 같아서 도대체 무슨 이런 일이 있느냐. 아이고 내 팔자야 그렇게 말할지라도 세월이 지나고 나서 돌이켜 보면 이렇게 아름다운 것이 될 줄 몰랐다. 모든 것이 합동하여 선을 이룬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요셉은 형들에게 팔려 종으로 가고 10년 동안 고생해서 잔뼈가 다 으스러졌으나 또한 보디발의 아내에게 참소를 당하여 감옥에 들어가고 감옥에서 해가 지고 해가 뜨도록 2년 동안 고통을 당하고 모든 것이 절망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으니 나중에 그는 국무총리로 발탁되어 애굽에서 그 당시 전 중동을 호령하고 다스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야곱은 그 아들 모든 자녀들을 데리고 애굽으로 내려가셔서 야곱이 죽고 난 다음 형들이 두려워해서 요셉에게 와서 간구할 때에 요셉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형들이 친히 와서 요셉 앞에 엎드려 가로되 우리는 당신의 종이니이다. 요셉이 그들에게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여기에 요셉이 깨달은 진리를 보십시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니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나이다 우리에게 해하려고 다가오는 모든 것조차도 하나님은 오히려 선으로 바꾸어 준다는 것을 알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일하시고 계심으로 아무리 좌절과 절망의 밤이 어두워도 눈물 젖은 눈으로 새벽을 바라볼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찬란한 희망이 떠오르게 하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는 언제나 맏물보다 끝물이 좋습니다. 우리 보기에는 나쁘게 시작했던 것이라도 끝은 좋게 마무리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므로 우리는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절대 긍정을 가져올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절대 절망에서도 절대 긍정을 가질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한번 따라 말씀해 주세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여러분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당신의 끝은 선입니다라고 인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이와같은 지식을 알면 우리는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합동하여 선을 이루는 찬란한 꿈을 바라보며 현실의 고통을 가지고 부정적이 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기뻐하고 언제나 기도하며 언제나 감사하며 언제나 긍정적인 마음의 자세를 가지고 두고봐라 끝이 좋아진다. 나는 현실을 바라보고 낙심하지 않는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 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낙심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내 앞에 찬란한 태양이 떠오르게 해 주실 것입니다. 이것을 믿고 나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에게 아무리 어두운 밤이 다가온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침이 오게 만들어 주십니다. 우리가 지금은 탄식하고 울지라도 눈물 젖은 눈으로 희망을 바라보고 절대적인 긍정적인 마음의 자세를 취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내일은 오늘보다 다음달은 금번달보다 명년은 금년보다 영원한 미래는 오늘날보다 낫게 만들어 주신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로소이다. 우리 아버지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아버지를 섬기고 감사하고 찬미하며 믿음으로 나가게 도와 주시옵소서. 그 아들을 아끼지 않고 주신 이가 그 아들과 함께 무엇으로 선물로 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우리 아버지여 예수를 믿고 아버지를 섬기게 만들어 주신 하나님 너무나 너무나 감사하옵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