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0월 10일
제목: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하나님
성구: 롬 4: 17-25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하나님”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가정에서 부부간의 갈등의 제일 큰 원인은 의견 충돌입니다. 마음이 서로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의 생각과 뜻이 정면으로 반대가 되면 잠잠할 날이 없이 언제나 분쟁이 있고 갈등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 함께 살며 일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뜻이 맞아야만 됩니다. 하나님과 사람이 함께 거하고 함께 일하기 위해서는 사람이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항복하고 순종해야 됩니다. 하나님과 우리가 감히 서로 앉아서 의논을 하고 의견을 일치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시고 우리는 피조물이기 때문에 우리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고 순종하고 복종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감히 하나님의 뜻과 행하심에 이의를 제시할 수 없습니다. 지으심을 받은 자가 지으신 자를 향하여 무엇을 하시나이까? 이런 질문을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일하심에 적응하여 함께 살아갈지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이 어떠하신 분인지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과 함께 우리가 일하며 살아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첫째로, 우리 하나님에 대한 우리 이해의 가장 근본은 하나님은 기적의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천지와 만물을 지으실 때에 기적으로 지었습니다. 말씀 한 마디로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을 지으시고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연 만물의 존재와 운행의 법을 만드신 하나님이시지만 그러나 그 법에 구속되지 않습니다. 주님은 언제나 필요하다면 그 법을 초월해서 초자연적인 기적을 행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시편 40편 5절에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의 행하신 기적이 많고 우리를 향하신 주의 생각도 많도소이다 내가 들어 말하고자 하나 주의 앞에 베풀 수도 없고 그 수를 셀 수도 없나이다” 그렇게 많은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시편 97편 9절에 “여호와여, 주는 온 땅 위에 지존하시고 모든 신 위에 초월하시니이다” 그는 죽은 자를 살리는 위대한 하나님이셨습니다. 여러분 죽은 자를 살리는 것은 우리의 과학으로나 이성으로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산 사람을 병들었을 때 의사는 의술을 통해서 약을 통해서 고치지만 죽은 사람을 사람의 힘으로 살린다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일입니다. 아직 인류 역사상 인간이 힘으로 죽은 자를 살린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신 것입니다. 흙으로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은 완전히 흙으로 돌아간 인생도 또 생기를 불어넣어서 살릴 수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과 우리 사람과 다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인간의 이성과 과학을 완전히 초월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고 엘리야는 과부의 아들이 병이 위중하여 죽었을 때 그가 가서 그 아들 위에 엎드려서 기도하고 살려 내었습니다. 또 엘리사는 여인에게 예언대로 아들을 주시고 아들이 병으로 죽었을 때 기도해서 살려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죽은 자를 살리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증명하였습니다.
여러분 요한복음 5장 21절에 보면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같이 아들도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었을 때 사람들은 모두 다 통곡을 하고 장례식을 준비를 했는데 예수님은 그 부모와 함께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들어가서 그 딸의 손을 잡고 딸아 일어나라. 죽은 딸이 그대로 살아 일어 났습니다. 주님께서 저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했습니다. 그 딸의 나이가 12살 쯤 되었습니다. 도저히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주님은 하신 것입니다. 나인성 과부의 아들이 죽어서 상거에 메여서 나가고 있었습니다. 그 과부 어머니가 땅을 치고 가슴을 치며 “아 이놈아 불효한 자식아 어떻게 이 어미를 두고 니가 먼저 가느냐” 통곡을 하고 울었다고 하는데 예수님과 행렬에서 만났습니다. 예수님을 그를 보고 불쌍히 여기사 그 상여를 중지시키시고 그 관뚜껑을 열라고 했습니다. 관뚜껑을 열자 그 죽은 청년을 보고 청년아, 일어나라, 자다가 깨어난 것처럼 부시시 일어나서 관에서 나와서 그 어머니 품에 안겼습니다. 여러분 이런 일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이 일은 도저히 하나님이 아니고는 그런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는 하나님이십니다. 더구나 죽은 나사로가 나흘이 되어 이미 그 몸이 부패해서 썩은 냄새가 나는데 누가 감히 그 나사로를 살리 수가 있습니까? 그의 자매인 마리아와 마르다도 우리 오라버니는 이미 썩은 냄새가 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그 무덤 문을 열게 하시고 그 무덤 앞에서 나사로야, 나오라. 말 한마디에 그 나사로가 수의를 온 몸에 동인채 그는 살아서 나왔습니다. 주님께서 풀어놓아 다니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사실들은 예수님이 하나님 되심을 증거하고도 남음이요 그리고 예수님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예수님의 생애는 기적의 계속이었습니다.
사도행전 2장 22절에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에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거하셨느니라”고 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오늘날 인류의 역사상 인간의 힘으로는 죽은 자를 살린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고 죽은 자를 살리는 하나님께서 암에 걸린 사람이 문제가 되겠습니까? 관절염 고치는 환자 고치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장님 귀머거리를 보고 듣게 하는데 무슨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절름발이와 앉은 뱅이를 고치는데 불가능이 있겠습니까? 죽은 자를 살리는 하나님을 우리가 알면 그 하나님은 우리의 삶 속에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이해를 잘 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하기를 옛날에나 하나님이 역사하셨지 오늘날에는 하나님이 역사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그 하나님은 옛날에 살아 계셨으나 오늘날에는 죽으셨다는 말입니까? 대개 여호와는 변혁지 아니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옛날에 죽은 자를 살리는 그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그 권세와 능력으로 우리 가운데 역사하십니다. 성경에 말하기를 오직 내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에 이 하나님의 역사를 보지 못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날 하나님을 확실히 알고 확실한 믿음으로 나간다면 우리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죽은 자를 살리는 그 놀라운 역사를 우리 가운데 베푸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을 때까지 가다릴 필요가 없어요 세포가 죽었으면 암이 되지요. 그 죽은 암을 뜯어내고 살려 내십니다. 심장이 죽어가면 그 죽은 심장을 살려 놓습니다. 폐가 죽어가면 죽어가는 폐를 살려 놓습니다. 뇌암으로 뇌가 죽어가면 뇌암을 제하시고 살려 놓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서 오늘날도 기적을 행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우리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이 하나님은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사람들은 없는 것은 없고 있는 것은 있습니다. 없는 것인데 여기 있어, 그러면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마음속에 꿈꾸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한번은 우리 사촌들이 저희가 사는 과수원에 왔는데 내가 사촌들 모아 놓고 난 다음, 내가 저 밖으로 나가보니까 산 속에 어마어마하게 큰 범이 한 마리 앉아 있더라. 눈에 불을 켜고서 범이 와서 있더라, 나는 상상 속에서 범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사촌들이 나를 따라서 몽둥이를 들고 그곳에 가보니 아무 것도 없거든요. 그래서 소문이 났습니다. 조용기는 거짓말쟁이다. 우리 사촌들이 거짓말쟁이. 범이 있다고 해서 가보니까 고양이도 없더라, 그런데 내가 잊지 못할 것이 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아버님이 오시더니만 용기는 거짓말쟁이가 아니다. 그러면 뭡니까? 그러니까 용기를 꿈이 많은 사람이다. 그가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라 꿈이 많기 때문에 자기 꿈으로는 그곳에 범이 있다고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쁜 것이 아니다. 꿈이 많은 사람은 나중에 큰 일을 할 수 있다. 나는 그 때 우리 아버님이 그 해석을 해 주는 것이 얼마나 마음에 감격이 되었는지 내가 꿈이 많구나. 거짓말쟁이가 아니고 나는 속으로도 내가 거짓말쟁이인가 그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고 꿈이 많은 것입니다. 그 때 이후로 제가 자라나면서 하나님 믿고 꿈을 많이 꾸었습니다. 그 꿈은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는데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꿈꾸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75세에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아브라함의 장차 아직 이루어지지 않을 것을 하나님이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말씀하셨다고요. 하나님은 바로 꿈꾸는 하나님이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의 꿈을 주셨습니다.
창세기 12장 1절로 3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이것은 현실과 다릅니다. 지금은 그런 것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나이 75세에 유목민족으로써 아주 촌 영감입니다. 그 촌 영감을 보고 이 위대한 꿈을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합니다. 지금 아브라함에게는 그런 것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말합니다. 하나님은 꿈꾸는 하나님입니다. 아브라함은 그 하나님의 꿈을 받아들여서 가슴 벅차게 해서 출발할 수 있었습니다. 가나안 땅에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도 보십시오.
창세기 13장 14절로 16절에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여기에 아브라함은 이제 노인이 되어 있고 부인은 할머니가 되어 있는데 아직 자식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없는데 있는 것처럼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이 땅을 다 네게 주고 네 자손은 티끌같이 많을 것이라. 꿈 같은 소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꿈을 꾸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꿈 같은 소리를 하시는 것입니다. 꿈 같은 소리를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은 하나님과 함께 일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꿈을 아브라함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이 꿈을 아브라함이 받아들이면 하나님이 그를 통해서 역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아들이 없는데도 아들이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꿈 같은 소리입니다.
창세기 17장 1절로 5절에 “아브람의 구십 구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세워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라 하시니 아브람이 엎드린대 하나님이 또 그에게 일러 가라사대 내가 너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열국의 아비가 될지라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함이니라” 꿈 같은 소리입니다. 99세의 할아버지가 89세의 아내를 통해서 아들을 낳겠다니 꿈 같은 소리가 아닙니까? 하나님은 꿈꾸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꿈 같은 소리를 하는 것입니다. 99세의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음성을 듣고 그는 정신이 몽롱하고 아득했습니다. 꿈인지 생시인지 99세 된 내가 89세 된 아내를 통해서 자식을 낳겠다니 그래서 내 이름을 아브라함 많은 민족의 조상이라고 하나님이 이미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불러 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오직 꿈꾸는 하나님만이 말할 수 있습니다. 꿈 같은 소리를 하십니다. 그러나 꿈 같은 소리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역사하는 길인 것입니다. 여러분 이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올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베드로 보고서 너는 베드로라고 했습니다. 그 원래 이름은 시몬인데 시몬은 성격이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와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를 베드로 즉 반석이라고 했습니다. 지금도 변화무쌍한 그를 보고 반석이라고 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꿈 같은 소리하십니다. 저 사람이 반석이라고요. 언제 웃었다가 언제 울지 모르고 언제 좋았다고 언제 나쁠지 모르고 언제 주님을 시인했다가 언제 부인할지 모르고 그를 반석이라고요 주님 꿈 같은 소리하지 마십시오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꿈꾸는 하나님입니다.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이 하나님에 대한 성품을 우리가 모르고는 하나님과 함께 일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 말씀하세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나이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기적은 무한하시고 그리고 하나님은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꿈꾸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오늘날 안 믿는 사람은 하나님 말씀 읽고 꿈 같은 소리 하네. 꿈 같은 소리를 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현실을 뛰어 넘어 꿈을 꾸시고 그 꿈을 가지고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내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마음속에 일하실 수 있는 공간을 예비해야 됩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신 그 하나님이 들어와서 일할 수 있는 특별한 마음의 공간을 만들어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가지고 있는 이성과 이 머리를 가지고는 하나님과 같이 일 못합니다. 하나님이 들어와서 일할 수 있는 공간을 우리 마음속에 만들어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즉 어떤 공간을 만들어야 하느냐? 기적을 믿는 마음의 공간을 만들어 놓아야 합니다. 우리는 항상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것만 받아들이도록 훈련되어 왔습니다. 이러한 마음속에 하나님이 들어올 공간이 없습니다. 무엇이든지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그리고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이성과 논리에 맞지 아니하면 안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성과 논리를 초월한 기적을 행하시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기적을 행하는 하나님이 들어올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이 만들어져야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잠언서 4장 23절에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했는데 이 마음속에 기적을 믿는 공간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어떻게 만들어집니까? 그것은 성경을 공부하고 믿음으로 우리의 마음속에 이성과 인간의 논리를 뛰어넘는 기적의 공간을 마련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이 공간에 들어올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성과 논리의 머리 속에는 못 들어오십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죽은 자를 살리는 기적의 하나님을 믿는 공간을 만들어 놓아서 눈에는 아무 증거 안 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을지라도 하나님은 와서 역사한다는 믿음의 공간이 만들어져야 그 속에 하나님이 들어와서 역사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그에게 나오는 자는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과 그를 간절히 찾는 자에게 복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믿음의 공간, 기적을 믿는 믿음의 공간을 만들어야 하나님이 그곳에 안주하시고 과학과 논리만 가지고 하나님을 판단하면 하나님은 들어와서 일할 처소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어떤 공간을 만들어야 하느냐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공간을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교육을 받을 때에 없는 것은 없고 있는 것은 있는 것이다. 그렇게 믿고 살도록 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없는데 있다고 말씀하심으로 우리의 일상적인 생각으로는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없는데 왜 있느냐?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오셔서 일할 수 있도록 없는 것을 있는 것과 같이 부르는 공간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2장 9절에 보면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눈으로도 못 보고 귀로도 못 듣고 마음으로도 생각하지 못한 것을 하나님은 이미 예비해 놓았으니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하나님은 없는 것을 이미 있는 것 같이 다 예비해 놓은 이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그렇게 보고 생각하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마음속에 꿈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꿈을 꾸시면 우리도 그 꿈을 받아들여서 하나님이 꿈 같은 소리를 할 때 우리도 꿈같은 소리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꿈이란 공간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꿈을 꿔야 됩니다. 마음속에 꿈의 공간이 있어야 됩니다. 여러분은 미래를 꿈꿀 줄 알아야 됩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십자가를 바라보고 마음속에 꿈을 꿔야 됩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못 박혀 몸 찢고 피를 흘린 것을 바라보고 용서받고 의인이 된 나를 바라보는 꿈을 꿔야 되는 것입니다. 나는 지금 죄인이지만 예수의 보혈을 통해서 용서받은 의인이 되었다는 꿈을 꿀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 꿈의 공간을 가지고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십자가를 바라보고 성령이 내 속에 들어와 계시고 천국이 내 속에 들어와 있는 것을 꿈 꿀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 꿈의 공간을 마음에 가져야 됩니다. 그래야 이 속에 성령과 천국이 들어올 수 있습니다. 내가 십자가를 바라보고 슬픔이 떠나가고 기쁨이 들어오고 모든 질병이 다 고침을 받고 나는 건강하게 되었다는 꿈을 마음속에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비록 지금 병들어 있을지라도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나는 벌써 나음을 입었다. 꿈을 꿀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꿈의 공간을 가져야 그 속에 하나님이 들어와서 일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렸다고 할지라도 십자가를 바라보고 주께서 나의 저주를 다 제거하시고 주께서 나의 모든 가난을 짊어지고 가셨다. 그러므로 주님 안에서 나는 부요하게 되고 형통하게 되었다는 꿈을 꿀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꿈같은 소리하지 마라. 그게 꿈입니다. 꿈을 십자가를 통하여 소유할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십자가를 바라보고 주님께서 그 십자가에서 사망과 음부를 다 철폐하시고 부활과 영생을 주고 천국을 주었다는 꿈을 소유할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 믿고 나는 부활하고 천국이 내 집이 되고 영생이 내 것이 되었다는 그 꿈을 꿀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꿈의 공간을 가져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생각하고 보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꿈의 공간인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꿈의 공간을 갖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하나님과 함께 일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꿈의 공간을 가진 사람만 찾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감각을 뛰어 넘어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합니다. 이 공간이 바로 마음의 꿈의 공간이요 우리는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얼마든지 꿈꿀 수 있고 그 꿈을 꿀 때 하나님이 함께 역사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요셉도 모세도 다 꿈꾸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꿈꿀 수 있었기 때문에 들어갈 수 있었고 이스라엘 백성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꿈꾸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을 반역하고 버림을 받고 말았습니다. 요번에 부흥회 C.G.I 대회에 남아공에서 오신 티어워럼스 목사님의 간증을 들어 봤는데 그가 집에서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데 성령께서 임하여서 말씀하기를 이 가운데 유방암으로 유방을 다 적출해 버린 부인이 있는데 그 부인의 유방이 도로 생겨났다. 그런 하나님의 계시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현실로써 불가능합니다. 유방암으로 유방을 다 적출해 버렸는데 어떻게 유방이 생겨납니까? 그것은 그렇게 말하면 저 목사 꿈같은 소리하네. 꿈꾸는 공간을 가진 사람만 그 이야기를 합니다. 이성과 논리적으로는 그 이야기를 할 수 없습니다. 그는 하나님 말씀 받아들이고 그 하나님의 꿈을 그대로 말했습니다. 여기 있는 자매님들 중에 유방을 다 적출하고 그리고 하나님이 새로 유방을 준 분이 계십니다. 그리고 그는 집회를 마치고 잊어 버렸습니다. 몇 달이 지나고 난 다음 한 부부가 자기에게 와서 목사님이 집회했을 때 유방암으로 유방을 다 적출하고 유방이 없는데 하나님이 유방을 주셨다는 그 말을 하셨지요. 그 말한 기억이 납니다. 내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그 부인이 화는 말이 내가 유방암으로 유방을 다 적출하고 유방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나는 그대로 믿었습니다. 도저히 인간의 이성으로는 불가능한데 나는 유방이 생긴 줄로 꿈꾸었습니다. 믿었습니다. 그날부터 내 가슴이 자꾸 부풀어 오르더니만 아름다운 유방이 생겨났습니다. 내가 유방을 적출해 낸 그 외과의사에게 남편과 함께 찾아가니까 의사가 당신이 분명히 그 여자요? 그 여자입니다. 진짜 그 사람이요? 내가 분명히 내 손으로 당신 유방 두 개를 베어 냈는데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 유방이 생겨났는지 그 남편을 보고 내가 당신 부인 유방을 만져봐도 괜찮아요? 남편이 괜챦다고 하니까 외과의사가 위도 눌러보고 밑도 눌러보고 만져보고 다른 의사들을 다 불러요. 이리 오시요. 내가 이 여자의 유방을 분명히 절제했는데 이 여자가 유방을 가지고 왔다. 다른 의사들이 웃으면서 안 믿는 것입니다. 그런 장난 같은 소리를 왜 하냐고. 아무 의사도 안 믿습니다. 왜 의사들이 이론적으로 논리적으로 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마음에 꿈의 공간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꿈 같은 일을 행할 때에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꿈의 공간이 없습니다. 안 믿습니다. 이 외과에서 유방을 적출해 놓고 도로 생긴 것을 만져보고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는 그런 사람을 통해서는 하나님께서 아무 기적도 행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꿈의 공간이 있어야 됩니다. 왜 아브라함을 하나님이 위대하게 사용했습니까? 아브라함은 죽은 자를 살리시고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하나님을 확실히 알고 믿고 그와 함께 동행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기적을 믿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아들 이삭이 20세쯤 되었을 때 그를 모리아 산에 제물로 드리라고 했을 때 그를 서슴지 않고 그 곳에 제단을 만들고 아들을 묶어서 나무 위에 올려놓고 칼을 뽑아 칼을 휘어잡고 목을 베려고 달려들었습니다. 왜냐? 죽은 자를 살리는 기적의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죽여 놓아도 살려 놓을 것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아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사랑한 것은 아브라함은 기적을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 죽이지 말라고 외치지 않았으면 그 아들 죽였을 것입니다. 그러면 또 하나님이 살려 놓았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된 것은 그 아들을 죽여도 살릴 것이라는 어마어마한 하나님에 대한 기적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는 꿈꾸는 하나님에 대해서 자기도 같은 꿈을 꾸었습니다. 정말 아브라함은 모든 사람 보기에 꿈같은 영감이었습니다. 나이 99세가 되고 그 아내가 89세가 되었는데 불구하고 자기 이름을 아브람에서 아브라함, 많은 믿음의 조상이라고 바꾸어 놓고 그 아내의 이름도 사래에서 사라로, 여주인으로 바꾸어 놓고 그 영감 부부가 서로 부릅니다. 저녁에 밥 먹을 때 되면 저 들에서 양치고 있는데 그 부인이 “아브라함” 모든 동네 사람들이 다 듣습니다. 아브라함이라고? 많은 민족의 조상이라고? 돌았군. 돌았어 꿈을 꾸고 있어. 꿈같은 소리 하네. 89세 된 할머니가 99세 된 할아버지를 보고 많은 민족의 조상이라고 완전히 꿈을 꾸고 있습니다. 사라 나 간다. 뭐 사라? 많은 자식의 여주라고? 부부간에 닮아도 그렇게 닮을 수가 있느냐! 부인도 꿈꾸는 여자고 남편도 꿈같은 소리한다. 그들은 꿈 같은 소리했습니다. 왜 하나님은 꿈꾸는 하나님이요, 꿈의 공간을 가진 속에만 일하는 것입니다.
여기 보세요. 로마서 4장 19절로 22절에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아브라함은 꿈꾸는 분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통해서 큰 역사를 이루고 그를 통해서 모든 지구의 인류들이 축복을 받을 수 있는 믿음의 조상으로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는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는 그 새로운 공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 모든 안 믿는 사람이나 믿는 사람들 대개가 이 머리만 가지고선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감각적인 체험적인 그런 것만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동행하려면 아브라함처럼 이 가슴속에 꿈의 공간을 가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죽은 자를 살리는 기적을 믿을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이 있어야 되고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보고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 꿈꾸는 마음의 공간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밑에 와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볼 때 다섯 가지 주님의 축복이 흘러 넘치고 있습니다.
용서와 의의 은혜가, 천국과 성령의 역사가, 기쁨과 치료이 역사가 그리고 번창과 축복의 역사가, 부활과 영생과 천국의 은혜가 십자가에서 우리에게 넘쳐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받아들여야 됩니다. 어디에서 받아들입니까? 머리 속에서 이론과 지식으로는 못 받아들입니다. 마음속에 꿈의 공간에서 받아들여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믿는다고 하면 안 믿는 사람들이 말합니다. 꿈같은 소리하네. 완전히 꿈같은 소리하네. 좋아요 꿈 같은 소리를 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같이하여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된 나를 바라보고 이렇게 나를 꿈꾸고 이렇게 된 꿈을 하나님이 기적으로 이룰 줄 믿는 사람을 위해서 하나님이 역사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며 강건하기를 간구하노라. 이것은 하나님의 꿈입니다. 이 하나님의 꿈을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주님의 은혜로 영혼이 잘 되고 범사에 잘 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꿈꾸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꿈꾸는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은 기적을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꿈을 꾸세요. 십자가 밑에서 그리스도를 쳐다보고 담대하게 꿈을 꾸세요.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는 것은 꿈을 크게 가져라. 내가 그 안에서 역사하겠다는 것입니다. 왜 예수를 믿는 사람이 꿈을 꾸지 않습니까? 왜 기적의 하나님의 믿지 않습니까? 죽은 자를 살리는 하나님을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이상의 기적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지금도 기적을 행하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 기적의 하나님을 꿈꾸십시오. 그 하나님과 함께 꿈을 꾸십시오. 마음속에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받아들이십시오. 없는 것을 있는 것과 같이 생각하십시오. 없는 것을 있는 것과 같이 믿으십시오.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입으로 시인하십시오.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받아들이고 기도하십시오.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받아들여 꿈꾸는 그 기도는 하늘 보좌를 흔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촌 영감이었습니다. 우리같이 교육을 못 받았습니다. 아주 시골 영감이 그리고 정식 교육도 못 받았습니다. 태양과 광야와 양떼들 밖에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한 촌할아버지가 그것도 75세가 되어서 이제는 인생의 황혼기에 들어선 그를 통해서 하나님은 하늘에 허다한 별과 땅의 무수한 모래같이 자손을 주고 그를 통해서 예수님을 태어나게 하시고 온 인류의 믿음의 조상이 되고 온 세계가 모두 다 아브라함을 칭송하는 것은 그가 학문이 많아서 그런 것도 아니고 지식이 많아 그런 것도 아닙니다. 도덕군자가 되어서 그런 것도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과 동행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오직 두 가지 조건이 그는 기적의 하나님을 믿었으며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을 믿었으며 그는 꿈꾸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하나님과 더불어 꿈꾸었습니다. 그의 가슴속에 머리가 아닌 이 기적의 공간, 꿈꾸는 하나님을 받아들이는,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는 꿈의 공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그는 하나님이 사용하는 위대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오늘 내 설교를 들은 여러분 중에 위대한 주부, 위대한 남편, 위대한 젊은이, 우리가 지금까지 상상할 수 없는 큰 역사를 나타낼 사람들이 많이 앉아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은 지금보다 훨씬 위대해질 수 있습니다. 그것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꿈꾸는 하나님의 그 꿈을 받아들이고 그 하나님과 함께 동행할 때 하나님은 여러분을 내일은 오늘보다 다음달은 금번 달보다 명년은 금년보다 월등하게 나은 사람으로 창조의 세계 속에 살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많은 사람이 입술로 주여 주여 하되 주님과 동행하지 않습니다. 일개 촌 노인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위대한 믿음의 조상이 된 것처럼 아버지 우리도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은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하나님을 마음속에 받아들이는 마음의 공간을 가지게 도와 주시옵소서. 우리 아버지 하나님,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사람은 기적을 믿어야 되고 꿈을 꿀 줄 알아야 합니다.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꿈꿔야 됩니다.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받아들이고 꿈꾸고 그 모든 은총을 누려서 오중 복음과 삼중 축복을 다 소유한 성도들이 되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