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0월 24일
제목: 믿음이란 무엇인가?
성구: 마가복음 11:20-25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믿음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믿음이 무엇인지를 가르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루 베다니에서 제자들을 데리시고 이른 아침에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길에 감람산 기슭 무화과 단지를 가시게 되셨습니다. 그곳에는 무화과 나무가 많이 모여서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 가장 잎사귀가 무성한 무화과 나무 밑에 가서 주님께서 무화과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분명히 말하기를 그 때가 무화과의 때가 아니었다고 말했습니다. 무화과 때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주님이 무화과 나무 밑에서 무화과를 찾으시다가 무화과가 없으니까 주께서 그 무화과를 보고 말씀하시기를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먹지 못하리라 그렇게 말씀하시고 그냥 그곳을 지나가셨습니다. 하루종일 예루살렘에서 일하시고 난 다음에 저녁에 베다니로 나왔다가 그 이튿날 아침에 또다시 제자들을 데리고 아무 말도 안하시면서 모른 체하고 그 무화과 나무 단지를 지나는데 베드로가 가만히 보니까 어제 예수님이 저주하신 그 무화과가 뿌리부터 나무 위에까지 완전히 말라 버린 것을 보았습니다. 주여, 어제 주님께서 저주하신 무화과 나무가 말랐나이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 자리에서 제자들을 바라보시고 믿음에 대한 중대한 교훈을 가르쳤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라 누구든지 저 산더러 명하여 저 바다에 던지라하고 그것이 이룰 줄 마음에 믿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한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그대로 되리라 서서 기도할 때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래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도 너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리라 이 주님의 가르침 속에 굉장히 큰 믿음의 비결이 들어 있습니다. 이 그리스도의 말씀을 상고해 봄으로 우리의 삶 속에 오늘 믿음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알아야 하겠습니다.

첫째로, 우리 주님께서 하나님을 믿으라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하나님을 믿을 수가 있습니까? 여러분 평생에 보지 못한 분을 믿으라고 하면 믿음이 생기겠습니까? 그러나 여기에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믿으라고 말하셨습니다. 역사상 하나님을 계신 그대로 보여주신 분이 오직 이 땅에는 한 분이 계십니다. 그분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본적이 없으되 예수님은 우리가 역사적으로 보고 말씀을 듣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예수님을 아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을 믿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은 하나이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성경은 거기에 대해서 무수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 1절로 3절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고 하심으로 예수님과 하나님은 동시에 같이 계셨으나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만물을 지으셨기 때문에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완전한 하나님이 완전한 사람으로 오셨기 때문에 예수님을 본 자는 하나님을 본 것입니다.
또한 요한복음 1장 14절로 18절에 보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거하여 외쳐 가로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니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여기에 우리가 보니 하나님의 품속에 계신 독생하신 예수님이 하나님을 우리에게 보여 주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모든 영광은 예수님 안에 있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1장 15절 19절에도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버지가 어디에 계시냐? 예수님 안에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과 아버지는 분리하려고 해도 할 수 없는 일체가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장 1절 3절은 거기에 대해서 단호하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에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하나님을 믿으라 그렇게 말씀하실 때는 나를 믿으라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예수님을 본 자는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요한복음 14장 7절로 11절에 “너희가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빌립이 가로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은 하나님 아버지를 믿는다는 것은 바로 예수님을 믿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아는 것은 바로 아버지를 아는 것입니다. 아버지 안에 예수님이 계시고 예수님 안에 아버지가 계신 것입니다. 아버지와 예수님은 하나이신 것입니다. 두 인격자이시나 완전히 하나로써 존재하시고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으라는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베푸신 그 은혜를 믿으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몸을 찢고 피를 흘리심으로 우리에게 놀라운 은혜를 제시해 주셨습니다. 바로 그것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무슨 은혜를 제시해 주셨을까요?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용서와 의를 제시해 주십니다. 무조건 믿으면 죄사함을 받고 용서받고 의롭게 되는 길을 열어 놓은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은 마귀를 내어 쫓아 버리시고 세상을 내어 쫓아 버리시고 그곳에 하늘나라와 성령으로 채워주시는 이 은혜를 베풀어 주셨으니 이것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예수를 통해서 우리의 모든 슬픔을 내어쫓아 버리시고 기쁨으로 채워주시고 우리의 모든 질병을 대속하시고 치료와 건강을 주시는 그 하나님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의 모든 저주의 가시채를 없애 버리시고 우리 저주를 예수님의 몸으로 심판해 버리시고 저주에서 해방하시고 모든 가난에서 놓여나게 해 주시고 형통과 복을 주시는 하나님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또 하나님을 믿으라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죽음을 죽여 버리시고 장사지내 버리시고 사망과 음부를 정복하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셔서 보좌 우편에 앉으심으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도 사망과 음부를 이기고 그리스도 안에서 보좌에 앉게 하셨다는 이 사실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하나님을 믿으라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타나신 하나님의 그 위대한 은혜를 우리가 알고 믿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날도 말씀을 통하여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나타나신 하나님,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로마서 10장 17절에는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하나님 말씀을 듣고 믿고 나가면 하나님을 믿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이 땅에서 우리 인간의 이성이나 지혜나 총명이나 인간의 경험을 믿고서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청춘을 믿을 수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다 변화되고 마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을 지으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며 여러분의 일생 갈 길을 이미 정해놓으신 하나님을 믿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나가면 부끄러움을 당치 않을 것입니다. 믿음이란 무엇이냐?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나신 하나님을 믿는 것을 믿음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 이외에 다른 것을 믿는 것은 기독교적 신앙이 아닌 것입니다.

둘째로, 믿음이란 무엇이냐? 믿음이란 입술의 고백입니다. 따라서 해봅시다. “믿음이란 입술의 고백이다” 여기 주님께서 말씀하기를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것을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않으면 그대로 되리라고 하심으로 또다시 믿음이란 입술의 고백이라는 것을 여기에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누구든지라고 말했음으로 남녀 노유 빈부 귀천 할 것 업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이 신분 이하를 불구하고 누구든지 입술의 고백을 할 수 있습니다.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로 던져라. 여러분 산이 바다로 던져 가는 것 보았습니까? 이것은 인간의 생각으로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우리 이성이나 경험을 통해서 볼 때 산보고 던지어서 바다에 던지라고 한다고 바다에 던져집디까? 이 산은 상징적으로 말한 것입니다. 우리의 생애 속에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 내 생각으로는 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이라도 내가 믿음으로 입술의 고백을 하면 하나님의 고백을 받아서 기적을 창출한다는 그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산이라는 것은 내 인생에 다가오는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태산같은 문제를 말한 것입니다. 내게 다가온 태산같은 문제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옮겨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옮기는데는 입술의 시인을 통해서 그 일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에 믿고 이것을 이룰 줄 믿고 입술로 고백하는 것은 큰 힘이 있습니다.
로마서 10장 10절에도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구원조차도 우리가 믿고 입으로 시인하면 구원에 이른다고 말한 것입니다.
마태복음 18장 18절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우리가 매고 푸는 것을 무엇으로 합니까? 입술로써 매고 푸는 것입니다. 네 입의 말로 네가 묶였으며 네 입의 말로 네가 사로잡힌 바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입술로 고백하고 땅에서 묶으면 하늘에서도 묶여지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려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입술의 고백을 아무런 믿음 없이 장난으로 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의심을 가지고 입술로 아무리 고백해 봤자 소용이 없지요.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고백을 해야 합니다.
야고보서 1장 6절에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히브리서 10장 38절에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여러분 우리가 실정적으로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 말씀의 고백을 통해서 천지를 지으셨습니다. 땅이 공허하고 혼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수면 위에 성령이 운행하실 때에 주님께서 말씀의 고백을 하셨습니다. 빛이 있으라 하매 빛이 생겨났습니다. 궁창 위의 물과 아래 물로 나뉘어지고 궁창이 나타나라 했을 때 하늘이 창조되었습니다. 그리고 땅에 물질이 나오고 온갖 열매 맺는 과일과 채소가 나타나라 하시매 그 말씀이 나와서 창조했습니다. 일월성신이 나타나라 하실 때 일월성신이 나타났습니다. 공중에는 새가 날고 바다에는 물고기가 헤엄치라고 할 때 그 말씀대로 되었습니다. 땅에 온갖 곤충과 짐승이 생겨나라 할 때 주님께서 말씀으로 말하시매 말씀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주를 창조하는 근본재료는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생애를 통해서 보십시오. 예수님은 말씀을 통해서 그는 죄를 사하여 주시고 귀신을 쫓아내시고 병을 고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고 바다를 잠잠케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 외에 다른 수단과 방법으로 이런 일을 한 적이 없습니다. 주께서 말씀하시매 하나님이 그것을 이루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도 말씀을 가지고 사역하셨습니다.
여러분 마가복음 16장 20절에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시니라”고 말씀하셨는데 베드로가 오순절 이후 성령받고 미문가에 태어날 때부터 앉은뱅이 된 사람이 사람에게 뭐라고 말했습니까? 우리를 바라보라 은과 금은 내게 없으나 내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라. 그러자 즉시로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그가 8년 동안 중풍병으로 누워있는 애니아를 바라보고 애니아야 예수께서 너를 고치시니 일어나라 그는 일어나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또한 그가 욥바에 가서 도르가라는 여자가 죽었을 때 그 시체를 다락에 얹어 놓은 것을 찾아가서 기도하고 나서 돌아보고 도르가야 일어나라 죽은 도르가가 일어났습니다. 베드로는 말씀으로 역사했지 말씀 외에 다른 것으로 역사하지 않았습니다.
바울도 루스드라에서 복음을 증거할 때 앉은뱅이 된 자가 말씀을 듣고 있는지라 네 발로 일어서라 하니 루스드라의 앉은뱅이가 일어나 버리고 말아 버린 것입니다. 여러분 잘 알다시피 바울이 드로아에 가서 한방중 까지 설교하다가 유두고가 창문에 앉아 잠이 깊이 들어 떨어져서 죽어 버렸을 때 사람들이 죽었다고 소요를 하니까 바울이 내려가서 그 유두고 위에 엎드렸다 일어나면서 생명이 이 속에 있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 어린아이가 살아나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또 주님의 제자들도 말씀으로 사역하셨습니다. 입술로 고백을 통해서 위대한 역사를 베풀어주신 것입니다. 오늘날 이 예수 믿는 사람들은 동일한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속에 계시고 동일한 말씀이 있으므로 우리의 입술의 말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역사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말을 통해서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창조적이고 생산적이며 희망찬 말을 해야지. 부정적이고 패배적이고 파괴적이고 절망적이며 원망과 불평을 말하는 이 말은 무시무시하게 우리의 영혼과 육체와 생활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입술의 말로 우리가 묶였으며 우리의 입술의 말로 우리가 잡히게 되었다고 성경은 말했습니다. 죽고 사는 권세가 입에 있으니 이 입술을 사용하는 자는 열매를 먹으리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믿음이란 무엇이냐? 입술의 고백입니다. 이 산더러 명하여 저 바다에 던져라 하고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마음에 믿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 예수 안 믿는 세상에도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말을 하면 그것이 심어져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생활을 하는 사람은 말을 골라서 조심해서 하고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말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하시는 말이 여러분의 현재와 미래의 삶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친다는 것을 알고 말을 잘 선택해서 해야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믿음이란 무엇인가? 믿음이라는 것은 기도하고 고한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이것이 바로 주님께서 믿음의 열쇠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도하고 구한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고 했는데 기도는 머리 속 기도와 뱃속의 기도가 있습니다. 우리가 그냥 머리 속에서 기도하는 것이 있지만 뱃속에서 우러나오는 감정에 복받힌 기도도 있습니다. 내가 지금 여기에 기도하고 구한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고 한 것은 머리 속의 기도가 아니라 배속에서 우러나오는 기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뱃속에서 우러나오는 기도를 하고 난 다음에는 응답 받은 줄로 믿으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뱃속에서 나오는 기도를 할 수 있겠습니까? 목표를 분명히 해야 뱃속에서 우러나오는 기도를 합니다. 목표가 없이 그냥 좌왕 우왕 두리뭉실하게 기도하는 것은 머리 속에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말했습니다. 내가 바라는 것이 분명해야 믿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 이 뱃속에서부터 기도하는 것은 간단 명료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6장 7절에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말을 많이 하니까 그 말하는데 바빠서 그만 그 속에서 나오는 열정적인 기도를 하지 못합니다. 말하기에 바빠서 중언 부언하지 마십시오. 여러분께서 말을 할 때 간단 명료하게 구원 주시옵소서. 구원 주시옵소서. 구원 주시옵소서. 치료하여 주시옵소서. 치료하여 주시옵소서. 치료하여 주시옵소서. 그렇지 않으면 직장은 직장 주시옵소서. 직장 주시옵소서. 직장 주시옵소서. 간단 명료하게 집중적으로 해야 뱃속에서 나오는 기도라고 하지 안 그러면 머리 속에 생각한다고 복잡해서 뱃속의 기도를 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 뱃속의 기도는 거듭거듭 자주자주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웃에 사는 부부에게 밤중 찾아가 다른 벗을 위하여 떡 세 덩이를 구할 때에 그냥 구한 것이 아니라 간청했다고 말했습니다
누가복음 11장 8절로 9절에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됨을 인하여서는 일어나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강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소용대로 주리라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여기에 간청이라는 것은 아예 무시무시하게 인내를 가지고 강하게 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냥 조금 구하다가 어렵다고 해서 뒤로 물러가면 안됩니다. 낙심하면 안돼요.
성경에는 누가복음 18장 1절에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저희에게 비유로 하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밤중에 친구를 위해서 이웃집에 가서 떡을 구하는 것처럼 간청하는 것입니다. 안된다고 해도 NO라는 대답을 받지 않고 구하고 또 구하고 간청하는 것입니다. 과부가 불의한 재판관에게 나와서 내 원수에게 내 원한을 갚아 주소서. 그는 간청했습니다. 거듭 거듭 또 오고 또 오고 간청했습니다. 그 결과로 그 재판관은 그 기도를 응답해 준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 우리가 머리속이 아니라 뱃속에 기도를 할려면 간청해야 합니다. 또 뱃속의 기도를 할려면 한서린 기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음에 한이 서려야 됩니다. 마음에 모든 감정을 집중해야 되는 것입니다. 모든 소원과 슬픔과 원한을 함께 합쳐서 한서린 기도를 해야지 기도를 그냥 장난 삼아 하다가 말고 하다가 말면 그렇게 되면 아무 것도 안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8장 7절로 8절에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여기에서는 원한이라고 말했습니다. 한서린 그런 기도를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뱃속의 믿음이 생길 때까지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머리속에 기도로서 넘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는 것은 뱃속에서부터 우러나오는 목표를 분명히 하고 간단 명료히 기도하며 거듭거듭 자구 간청하고 한서린 기도를 통해서 완전히 원수 귀신을 허물어 뜨려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마음속에 이제는 응답 받았다는 확신이 다가오고 평안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불안이 사라지고 초조함이 사라지고 막연한 마음이 사라지고 이 머리속 기도가 아닌 뱃속의 기도를 하고 나면 이 뱃속에 하나님의 평안과 확신이 가득해지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3절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이것도 뱃속의 기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9장 23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뱃속의 기도를 통해서 확신이 다가왔을 때 그 믿음을 가지고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7장 38절에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뱃속에서 기도하면 나중에 승리하면 상쾌한 승리의 역사가 그 속에서부터 넘쳐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머리속 기도와 뱃속 기도는 그렇게 틀립니다. 머리속의 기도는 지나가는 바람처럼 기도하는 것이지만 뱃속의 기도는 마치 강물이 넘쳐 나오듯이 이 뱃속에서 기도가 용솟음치고 올라와서 마귀의 진을 훼파하고 하나님의 보좌에 상달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그 다음에는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강렬히 꿈을 품어야 합니다. 성경에 기도하고 믿은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기도하고 구한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이미 받은 줄로 믿으라 이것이 바로 아브라함의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정말로 모범된 것입니다.
로마서 4장 17절로 18절에 보면 “기록된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의 믿은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로마서 4장 20절로 21절에 보면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 믿음이라는 것은 아브람처럼 나이 100세가 되고 아내가 90살이 되든 말든 그가 뱃속으로부터 기도하고 부르짖어 하나님께 응답을 받았으면 눈에는 아무 증거 안 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강렬하게 마음속에 꿈을 품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총 결산입니다.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생각하고 보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여러분 주님께서 말씀하신대로 강렬한 뱃속의 기도를 하고 난 다음에야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기도할 때 언제나 유의해야 할 것은 믿음은 사랑으로 말미암는다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미움이 마음속에 있으면 믿음이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용서와 화해가 있고 또 우리 마음속에 미움을 극복하고 용서와 사랑이 있으면 믿음은 극대화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을 믿는 것이 믿음이요 믿음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입술로 고백하는 것이 믿음이요 믿음이란 받은 줄로 믿고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강렬히 꿈꾸고 믿고 입으로 시인하는 것이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예수님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를 믿는 것이요. 믿음이란 입술의 고백입니다. 믿음이란 뱃속의 기도를 하고 받은 줄로 믿고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강렬히 마음속에 꿈꾸고 생각하고 말하고 기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은 말씀합니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기도-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 주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데리시고 감람산 언덕 무화과 나무 단지에서 믿음에 대한 강의를 하신 것처럼 오늘 동일한 말씀을 우리 여의도순복음 교회 성도들 앞에서 전달했습니다. 내 아버지시여 주님께서 믿음의 총채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믿음이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를 믿는 것이고 믿음이란 우리가 타협하지 않고 강력한 입술의 고백을 하는 것이고 믿음이란 머리속 기도가 아닌 뱃속의 기도를 하고 마음에 확실한 믿음이 생겨서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강렬하게 꿈꾸고 생각하고 말하고 기대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주님은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주께서 가르치신 이 믿음을 우리가 다 받아서 깊이 묵상하고 생각하고 이 믿음대로 살아서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가 우리 생애 속에 체험되게 하여 주시옵시고 마귀의 사슬에서 다 놓여남 받고 흑암의 권세를 깨뜨리고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잘 되며 강건하며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역사가 나타나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