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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11월 7일 제목: 성공적인 인간관계 성구: 마태복음 5:38-42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성공적인 인간관계”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최소한 가족단위로부터 이웃과 사회와 더불어 살아가도록 지음을 받았습니다. 어떤 사회학자 연구 결과를 보니까 한 사람의 사회적 성공과 실패가 절대적으로 인간관계에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한 사람의 성공적인 삶에 있어서 기술이나 능력은 불과 18%밖에 영향력이 없고 82%가 인간관계에 있다고 그는 연구 발표를 한 것을 읽어 보았습니다. 오늘날 많은 가정이 파괴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절대적인 수가 인간관계의 부조화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좋은 인간관계를 위하여 자아를 성찰하고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고쳐야만 그래야만 올바른 인간관계를 구축해 나갈 수가 있습니다. 무조건하고 자기의 단점을 마귀의 장난이라고 돌리면 안됩니다. 잘못은 진실되게 회개하고 성품의 변화를 위하여 겸손히 기도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성공적인 인간관계를 가질 수가 있겠습니까? 첫째로, 우리는 타인을 생각하는 마음을 항상 가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서양에서는 공중 식당에 좀처럼 어린아이를 데려오지 않습니다. 어린아이를 데려가더라도 절대로 뛰어 놀지 못하게 합니다. 우리 한국에는 식당에 가면 어린 아이들이 막 뛰어다니며 난장판입니다. 한번 중지시켰다가는 그 부모가 눈을 흘기고 야단입니다. 이것은 인간관계를 형성하는데 절대적인 지장이 됩니다. 예배당에 와서 어린아이들이 뛰어 놀지 못하게 하는 것은 서양에 가면 철저합니다. 그 부모님이 눈을 부릅뜨고 무릎를 때리면서 조용하게 시킵니다. 우리 한국 이민교회에 가서 예배를 보려면 지금 설교를 하는데 강단에 애들이 뛰어가서 내 옷자랏을 잡아당깁니다. 그래도 부모가 좋다고 싱글벙글합니다. 도무지 아예 겉잡을 수가 없습니다. 남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기 애들만 귀여워서 그것만 오냐오냐하고 키우는 것입니다. 양보의 미덕을 철저히 가르쳐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 언제나 예수님 중심으로 타인을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날 중심으로 이기주의로 생각해서는 절대로 좋은 인간관계를 만들 수가 없습니다. 마태복음 7장 12절에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라고 말했습니다. 이러므로 남을 대접하는 늘 심정을 가지고 타인에 대한 깊은 관심을 기울일 때 좋은 인간관계를 맺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타인을 부정적으로 비판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 밤말은 쥐가 듣고 낮말은 새가 듣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내가 몰래 친구에게 타인에 대한 비평을 하면 그 친구는 자기 친구가 있고 그 다른 친구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말은 순식간에 전파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평가는 하되 판단은 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평가는 필요합니다. 이 사람이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 일을 잘하느냐 못하느냐 실력이 있느냐 없느냐 평가는 필요하지만 그러나 판단은 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7장 1절로 5절에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우리들은 언제나 자기들의 잘못은 등뒤에 걸머지고 다른 사람의 잘못은 내 앞에 목에 걸어 놓고 언제나 다른 사람 잘못만 들어다 보고 자기의 잘못은 등에 돌려놓고 보지를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쉽게 늘 모이면 다른 사람의 결점을 비판하고 판단합니다. 이러한 것이 인간관계를 파괴하는 무시무시한 원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 좋은 인간관계를 갖기 위해서는 타인을 이용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진실되게 사람과 교제를 해야지 진실되지 않게 남을 이용하면은 이용을 당한 사람은 나중에 크게 모욕감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면서도 하나님을 이용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내가 한번 병자를 위해서 열심히 기도해서 심방도 하고 그래서 그 병자가 낫자마자 교회를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내가 물었습니다. 왜 하나남의 은총을 그렇게 받고 병이 고침을 받았는데 왜 교회를 안 나오냐고 하니까 나 병 나으려고 교회 갔는데 나았으니까 이젠 갈 필요 없지 않냐고 그렇게 말합디다. 그것은 하나님을 이용하려고 나왔을 따름입니다. 하나님은 한번은 이용당할지 몰라도 다음은 다시 이용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마태복음 22장 37절로 39절에 보면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고 이웃을 진실로 사랑해야지 이용하면 안됩니다. 남편이 아내를 자기의 욕망의 도구를 이용하고 자기의 생활수단으로 이용한다면 그 아내가 남편을 사랑할 리가 만무한 것입니다. 또 아내는 남편이 돈을 벌어다 주고 자기에게 행복하게 해주는 수단으로 생각한다면 이것은 중대한 잘못인 것입니다. 진실한 사랑이 다른 사람의 마음속에 진실을 일으키는 것이지 타인을 이용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이용되었다고 생각할 때 인격적인 모욕감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13장 10절에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고 말했습니다. 진실한 사랑, 이것이 모든 것에 통하는 것입니다. 넷째로, 우리가 참된 인간관계를 갖기 위해서는 타인의 장점을 높이 평가하고 칭찬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칭찬은 칭찬 받는 사람을 영화롭게 합니다. 우리가 칭찬 받을 때에 마음속에 영화로움이 넘쳐 흐르고 뜨거운 감이 솟아 오르는 것입니다. 칭찬은 용기와 기쁨의 기름을 치게 하는 것입니다. 잠언서 17장 22절에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고 말했었습니다. 잠언서 18장 20절로 21절에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하여 배가 부르게 되나니 곧 그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하여 만족케 되느니라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인간관계의 기름을 치는 것은 상대방의 장점을 알아서 높이 평가해주고 칭찬하는 것입니다. 남편이 부인을 바라보고 언제나 그 장점을 찾아서 칭찬해 주면 그 부인의 마음속에 영화로움을 느낍니다. 마음에 따뜻한 훈기를 느낍니다. 또 부인도 또 한가지입니다. 남편의 단점을 들어서 자꾸 바가지 긁지 말고 남편의 장점을 들어서 칭찬하고 흠모해주면은 그 남편의 마음이 얼마나 흐뭇해지고 영화로움을 느끼는지 모릅니다. 칭찬은 여러분 우리의 삶속에 용기를 주고 삶에 기쁨을 주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좋은 인간관계를 갖기 위해서는 타인의 장점을 높이 평가하고 칭찬하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됩니다. 다섯째로, 좋은 인간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주장이나 변명만 하는 것입니다. 타인이 말하면 가만히 있어 가만히 있어 내 말 들어봐 다른 사람은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습니다. 강압적으로 자기 주장을 합니다. 내게 신앙 상담하러 오는 많은 자매님들이 그런 말을 합니다. 억울해서 살 수가 없다고 왜냐하면 남편이 한번 말을 시작하면 자기 일방통로로 이야기만 하고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억압해 버리고 내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 그래서 마음이 터질 것 같다. 그런 말을 하고 우는 자매님들이 많습니다. 또한 어떤 중고등학교 학생들도 내게 신앙 상담 와서 하는 말이 우리 부모님은 일방통로입니다. 우리말은 안들어 주고 전부 이것 해라 저것 해라 우리가 말을 하려고 하면 가만히 있어 끝났어 가! 이래서 부모님을 견딜 수가 없다고, 도저히 우리 말을 이해해주지 못한다고 그런 말을 합니다. 여러분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은 굉장히 힘이 듭니다. 그러나 자기 주장이나 변명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잠언서 10장 19절에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키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저는 신앙 상담을 많이 하기 때문에 신앙 상담에서 끊임없이 자기 말만 하는 사람을 많이 봅니다. 제발 좀 핵심을 찔러서 말을 해 주십시오 하면 예 해놓고 또다시 자기 말만 시작합니다. 자매님들을 처녀 때 자랄 때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일생 살아온 이야기를 하는데 끝이 없습니다. 수 없이 자제를 하고 이제는 무엇 때문에 왔는지 이야기하라고 하면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내 말 좀 들어봐 주십시오 그렇게 합니다. 남의 말을 들어준다는 것은 굉장히 피곤하고 지칩니다, 그러나 타인의 말을 들어주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좋은 인간관계를 만드는데 필요한 요소인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15절로 16절에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 서로 마음을 같이 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말라” 그러므로 사람들이 말을 듣고 거기에 동의를 해주면 신앙 상담하러 온 사람들이 대게 자기 문제를 자기가 해답하고 돌아가는 것입니다. 말 많이 하고 자기 문제를 자기가 해답해 놓고 그 다음에는 좋은 말씀 들었다고 인사하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을 들어준다는 것은 굉장히 필요한 것입니다. 여섯째로, 좋은 인간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도움을 베풀려고 애를 써야 되는 것입니다. 자꾸 내게 도움을 달라고 하지 말고 남에게 도움을 베푸는 이러한 삶을 살 때 좋은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몇 마디 위로나 격려의 말이 굉장히 도움이 됩니다. 심령이 답답하고 고통스러울 때 몇 마디 이해하고 동정하는 말, 격려와 용기를 주는 말이 사람을 새롭게 만들어 놓습니다. 잠언서 12장 25절에 “근심이 사람의 마음에 있으면 그것으로 번뇌케 하나 선한 말은 그것을 즐겁게 하느니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께서 이웃이 번뇌하고 고통스러울 때 몇마디 선한 말을 해줄 수 있잖아요 이러한 것이 굉장한 인간관계를 좋게 만드는 것입니다. 힘이 있는 대로 여러분 도와주어야 합니다. 잠언서 3장 27절에 “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며” 힘이 없는데는 할 수 없지만 힘이 있는 한 힘껏 도와주는 것입니다. 시편 112편 5절로 6절에 “은혜를 베풀며 꾸이는 자는 잘 되나니 그 일을 공의로 하리로다 저가 영영히 요동치 아니함이여 의인은 영원히 기념하게 되리로다” 속옷을 달하고 하면 겉옷까지 주며 5리를 가자하면 10리를 가고 구하는 자에게 주고 꾸고자하는 자에게는 거절치 말라고 하니까 사람들은 그러면 인생은 어떻게 사는냐고 그렇게 말합니다. 게으른 사람은 사람들이 와서 다 달라고 해서 다 가지고 가면 어떻게 하느냐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 말씀을 과대 평가하면 안됩니다. 말씀 그대로 해석해야 됩니다. 속옷을 달라고 하면 겉옷을 주는데 입던 속옷 몇 푼 안됩니다. 겉옷도 얼마나 어디 가치가 갑니까? 그러면 간단하다는 것입니다. 5리를 가지고 하면 10리를 가라, 오리간 김에 더 걸어가주는 것 문제가 안됩니다. 그것을 확대해서 해석해서 공산당들이 서울을 달라고 하면 제주도까지 주며 사람들이 와서 자동차를 빌려달라고 해서 집까지 빌려주며 그렇게 확대해석을 하면 안됩니다. 지극히 적은 것 그 생활에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그런 것 가지고서 기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저는 친구 중에 김장환 목사님을 존경하는 것은 김장환 목사님은 보면 힘이 있는 대로 도와주고 어떨 때는 저 사람 바보아니냐 싶을 정도로 남이 부탁하는 사건을 듣고서 할 수 없는 것도 꼭 되든 안되든 끝까지 해봐 줍니다. 그리고 어떠한 사람이 감옥에 들어가거나 어려움을 당하면 그 감옥에 꼭 찾아가서 예배드려주고 돌봐주는 그런 좋은 성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 김장환 목사님보고 참 좋은 성품을 가졌다고 하는데 그 때문에 그는 많은 친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분을 싫어하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일곱째, 의무를 초월해서 일해야 합니다. 여러분 꼭 시키는 그 일만 하고 그 외의 일은 안하는 이러한 것은 좋은 이웃을 만들지 못합니다. 우리 집 앞에 빗자루로 쓸 때 이웃하고 경계를 해서 우리 집만 싹싹 쓸고 옆으로는 먼지를 싹싹 쓸어 내어놓고 그렇게 하면 좋은 이웃이 어떻게 됩니다. 우리 마당 쓸 때 남의 마당도 함께 쓸어주는 것, 그런 것이 좋은 이웃을 만드는 것입니다. 필라델피아의 어느 백화점에 비가 오는 날 가구점에 손님도 없어서 가구점 주인이 이렇게 앉아 있는데 할머니 한 분이 기우뚱거리면서 이 가구점 저 가구점을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할머니 가구를 사러오셨습니까? 아니요 비가 와서 밖에 나갈 수 없고 내 운전수가 차를 가져 올 때까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이리저리 봅니다. 그래요 그러면 우리에게 들어와서 앉으세요 아주 좋은 안락의자도 있습니다. 아니야 괜찮아 아, 오세요 모시고 들어와서 그 가구점에 있는 아주 푹신푹신한 안락의자에 할머니를 앉혀놓고 자동차 넘버가 무엇입니까? 그 넘버를 알아서 바깥 주차장으로 들락날락 하면서 그 운전기사가 오기를 기다렸다가 운전 기사가 왔을 때 그 할머니를 모시고 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이 가구점 주인은 아무 관계도 없는 여인에게 자기 해야할 분수를 넘어서 친절을 베풀었습니다. 그랬는데 몇 일 후에 편지가 한 통 왔습니다. 우리 회사에 수백만 달러 가구를 넣으려고 하는데 우리 어머님이 끝까지 당신 가구점의 가구를 넣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사인에 강철왕 카네기로 되어 있습니다. 그 어머니가 다른 분이 아니라 강철왕 카네기의 어머니라 이 가구점은 그날로부터 백만장자가 되었습니다. 호박이 넝쿨째 떨어졌어요. 조그마한 친절이 굉장한 상급을 가져오게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어느 곳에 가나 주인 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시장터에 가면 내가 주인이라고 생각하고 시장터에 물건 하나라도 잘 정돈 정비하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내가 공중도덕이 있어 그런 것이 아니라 내가 공중의 물건을 쓸때는 수도꼭지 하나라도 주인의식을 가지고 써야합니다. 화장실 하나라도 주인의식을 가지고 깨끗이 써야 합니다. 내 것이 아니라고 휴지를 싹싹 뜯어서 쓰지 말고 내가 주인이면 아까워서 그렇게 쓰지 않지 않습니까? 종이도 한 장만 뽑아 내어서 손 닦고 합니다. 주인의식을 가지고 살면 이러한 사람은 좋은 이웃을 만들 수가 있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6장 10절에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잠언서 28장 20절에 “충성된 자는 복이 많아도 속히 부하고자 하는 자는 형벌을 면치 못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의무를 초월해서 충성스럽게 일하십시오. 내가 맡겨준 바 사명을 뛰어 넘어 더 많은 노력을 가하면 하늘 나라에 하나님이 그것을 갚아 주시는 것입니다. 여덟째로, 진실된 마음으로 도움에 감사를 표시하는 사람은 좋은 이웃이 될 수 있습니다. 도움을 받고 욕을 하는 사람이 많아요. 도움을 안 받은 사람은 욕을 안하는데 오히려 도움을 받은 사람은 자기가 도움을 받았다는 열등의식과 좌절의식, 그것을 불식하기 위해서 도움 준 사람을 욕을 합니다. 나는 그런 사람을 너무나 많이 보았고 너무나 많이 당했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도와주고 돌아오는 것은 욕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지가 그까짓 것 도와주었다고 큰 소리하느냐 아이고 더러운 것, 그리고 하나님이 큰 교회 세운 것은 우리 도우라고 큰 교회 세웠지 자기 혼자 목회하라고 세웠나 이렇게 도와주고 억울하게 매를 맞고 뺨을 얻어맞습니다. 그런 사람은 좋은 이웃이 되지 못합니다. 또 도움을 받고도 모른 체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러한 사람도 도와주는 사람에게 굉장히 섭섭한 마음을 갖다 줍니다. 그러나 도움을 받고 난 다음 두고두고 감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는 저희 제자들 중에도 내가 길러서 목회에 내보낸 제자가 두고두고 감사한다고 말합니다. 제가 이제는 그만하라고 해도 꼭 매달마다 판공비로 쓰라고 돈을 얼마씩을 가지고 언제나 찾아옵니다. 이것은 하루 이틀이 아니고 1년이 가고 5년이 가고 10년이 가도 끝없이 찾아와서 감사를 표시합니다. 그러한 사람을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해주고 싶은 생각이 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도움을 받았으면 도움을 준 사람에게 깊이 깊이 감사해야 좋은 이웃을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시편 50편 23절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하나님도 우리에게 도움을 주셨을 때 우리가 감사하면 영화로움을 느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골로새서 3장 15절에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우리는 끊임없이 감사하고 도움을 베푼 것은 진실로 고맙게 생각하고 감사 보훈을 생각해야 합니다. 더구나 우리를 길러주시고 우리를 살려주신 부모님의 은혜에 대해서는 늘 감사 보훈의 생각을 해야 합니다. 부모에게 불효하고 부모의 도우심에 감사하는 마음을 안 가지는 사람은 절대로 좋은 이웃이 될 수 없습니다. 자기 부모를 공경하고 감사하지 못하는 자가 누구를 공경하고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아홉째로, 좋은 이웃이 되기 위해서는 죄송합니다. 실례하겠습니다 하는 공손한 자세를 버리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례히 행하면 절대로 좋은 이웃이 되지 못합니다. 오만 방자하여 목에 힘을 주고 어깨에 힘 주고 돌아다니면 모든 사람들의 기피인물이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 4절로 5절에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삶 속에 조그마한 일에 대해서도 죄송합니다. 실례합니다를 할 줄 알아야 됩니다. 자기 아내라고 해서 자기가 말 잘못해 놓고 난 다음에 미안하다는 말 못할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아내에게도 죄송해요, 내가 잘못했어요. 용서해 주세요. 남편에게도 죄송해요 내가 잘못했어요 용서해 주세요 그런 말을 하면 부부간에 금실이 좋아집니다. 그런데 우리는 부부랑 같이 사는데 그 뭐 죄송합니다 용서해 주세요 그런 말을 하느냐고 하는데 그것은 절대적으로 잘못 생각한 것입니다. 가까울수록 죄송합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미안합니다를 많이 해야 합니다. 이 단어는 참으로 좋은 단어입니다. 가장 죄송합니다를 많이 하는 민족이 일본사람입니다. 일본에 가면 ‘스미마생’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항상 자기를 낮추는 자세를 합니다. 그러면 세상에서 제일 친절한 민족으로 인정받고 있지 않습니까? 이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언제나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를 많이 말해야 돼요. 사람 사이를 비집고 나가면서도 비켜 비겨 합니다. 이것은 죄송합니다. 길좀 비켜 주십시오 하면 얼마나 좋습니까? 미국 사람들은 조금만 몸이 닿아도 미안합니다. 조금만 길을 비켜달라고 해도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실레합니다라는 말을 꼭 많이 사용합니다. 우리 한국은 그 말을 쓰지 않습니다. 국회에 가보십시오 죄송합니다. 실례합니다가 어디에 있습니까 멱살 잡고 머리 박고... 이것은 죄송합니다 실례합니다가 아니라 난장판입니다. 그러니 거기에 좋은 이웃이 있습니까? 여야간에 그냥 막가는 막가파들만 되어서 함께 정치한다고 하지요. 그러므로 죄송합니다. 실례합니다를 하는 사람은 속히 화내지 않습니다. 잠언서 16장 32절에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니 빨리 성을 내는 것은 굉장한 손해가 오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19절로 20절에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하라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 이러므로 언제나 성을 내고 나면 후회가 됩니다. 성내고 나면 자기가 못나 보입니다. 이러므로 할 수 있는 끝가지 성을 안내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열번째로, 우리가 타인과의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자기의 장점을 배우려고 노력해야 되는 것입니다. 나보다 나은 사람을 시기하고 질투하지 말아야 합니다. 제가 큰 교회를 목회하기 때문에 작은 교회를 목회하는 사람이 큰 교회를 목회하는 곳에 와서 배우려고 하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고 자꾸 욕을 합니다. 자기가 큰 교회를 한다고 건방지게.. 건방지게도 안했는데 그렇게 욕을 합니다. 큰 교회를 하면 큰 교회에서는 설교를 어떻게 하며 교회 조직은 어떻게 하며 어떻게 성도를 인도하는가 연구하고 배우면 타산지석으로 자기에게 유익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않고 온갖 개인의 인격적인 모함을 들어서 자꾸 결점을 말하고 욕을 하기 때문에 정말로 남 앞에 서서 행한다는 것은 굉장히 힘이 듭니다. 그러나 성공하는 사람 보면 나보다 나은 사람을 진정으로 존경하고 사랑하고 배우려고 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도 많이 있어요. 나보다 나은 사람을 흠모하고 존경하고 무엇을 해서 저렇게 나보다 성공했는가 배우려고 애를 쓰는 사람 이런 사람은 반드시 성공하게 되고 또 좋은 이웃이 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빌리보서 2장 3절에 기록한 말씀대로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배우려고 애를 쓰는 그런 태도를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남편은 아내에게 배우려고 하고 아내도 남편에게 좋은 점을 배우려고 하고 심지어는 자녀들에게도 배울 것이 굉장히 많습니다. 하물며 이웃에게야 배울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므로 공자님 말씀하기를 사람이 세 사람이 같이 가면 그 중에 한 사람은 선생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나은 점이 있다는 것을 언제나 생각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배우기를 원하고 타인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높이 평가하고 칭찬하는 그런 삶을 살 때에 우리들은 좋은 인간 관계를 맺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인간사회를 떠나서 살 수 없습니다. 독불장군이 없지 않아요? 서로 끌어주고, 밀어 주고, 받쳐주고, 의지하면서 인생을 살아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웃이 다 떠나가서 지극히 고독하고 외롭고 버림받은 사람이 되고 맙니다. 이러므로 오늘 제가 여러분께 말씀 한 대로 첫째로 타인을 생각하는 마음을 가지고 둘째로 타인을 부정적으로 비평하지 말고 셋째로 타인을 이용하지 말고 넷째로 타인의 장점을 높이 평가하고 칭찬하고 다섯째로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려 주고 여섯째로 도움을 베풀 수 있는 대는 언제나 도움을 베풀려고 노력하고 일곱째로 의무를 초월해서 일을 하고 여덟째로 진실된 마음으로 도움에 감사를 표시하고 아홉째 죄송합니다. 실례합니다 겸손한 자세를 가지고 열째로 타인의 장점을 배우려고 노력하는 그러한 삶을 살 때 우리는 다른 사람과 좋은 이웃이 되며 많은 사람과 좋은 인간관계를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회학자가 발표한 것처럼 인생에 성공하는 사람의 능력과 기술은 불과 18%밖에 영향이 없다는 것입니다. 82%의 성공의 비결은 인간관계에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내가 기술이 좋고 능력이 있어도 그것은 성공에 18%밖에 안됩니다. 우리가 어떻게 인간관계를 가지는가가 82%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겸손하게 자기를 성찰하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자기의 인간관계가 올바르게 된지를 살펴보고 회개하고 변화를 받아야 할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5절에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항상 생각하고 품고 좋은 이웃이 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의 많으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혼자서는 결코 살 수가 없습니다. 부모가 있고 형제가 있고 남편이 있고 아내가 있고 일가 친척이 있고 이웃이 있습니다. 우리는 좋은 인간관계를 맺을 때에 우리의 생활속에 성공과 기쁨과 행복이 다가오고 나쁜 인간관계를 맺으면 실패가 다가오고 파괴가 다가오고 슬픔과 고통이 다가옵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여 우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본 받아 좋은 인간관계를 가질 수 있도록 항상 자기를 성찰하고 자기를 낮추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