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1999년 11월 28일 제목: 그래도 사랑해야지 성구: 고전 13:1-7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그래도 사랑해야지”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사랑은 해도 좋고 안 해도 무방한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삶의 본질이며 내용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평안도 기쁨도 행복도 성공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고린도전서 13장 1절로 3절까지는 사랑의 필요 불가결성을 이렇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외국어를 말하고 천사처럼 아름답고 설득력 있게 연설하는 것은 참으로 부러운 능력인 것입니다. 그래도 사랑이 그 모든 능력의 기반이 되어 있지 않으면 그것은 요란스러운 소리뿐 아무 의미가 없는 위선과 가식에 불가하다는 것입니다.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미래를 정확히 예언하고 필요한 모든 지식을 갖고 있다면 이러한 사람은 천장 모를 연봉을 받거나 국가와 세계를 이끌어 갈 수가 있습니다. 거기에다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다면 위대한 사업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사랑이 삶의 기반이 되어 있지 않다면 이 모든 것이 무가치하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사랑 없는 지식과 능력은 쓰레기더미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어떤 행위보다도 그 행위의 내용이 더욱 중요하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으로 구제하는 것은 참으로 장한 일입니다. 더구나 자기 몸을 불사르게 내어 주는 것은 상상을 초월한 희생인 것입니다. 그럴지라도 그 동기가 사랑이 아닌 이기적인 목적이나 인기나 정치적인 목적 때문에 이루어진다면 이것은 전혀 무익한 일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 삶의 전 과정에서 사랑을 제하여 버리면 그 삶이 어떻게 위대하게 보일지라도 실제로는 내용도 없고 무가치하고 무익하다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사랑은 해도 좋고 안 해도 무방한 것이 아닙니다. 사랑이 없이 산다는 것은 전혀 허무맹랑한 자기 기만에 빠진 인생이요, 속고 거짓된 인생을 살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랑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어떻게 해야 사랑을 갖고 살 수가 있을까요? 성경은 거기에 대한 해설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첫째로, 사랑은 오래 참는다고 말했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에 자식이 성장하는 동안에 온갖 대소변을 다 거두어주며 온갖 못된 짓을 다 참으며 오래 기다립니다. 그것은 사랑이 부모의 가슴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런 이야기는 읽어 본 적이 있습니다. 어떤 젊은이가 교통사고로 두 눈을 잃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얼마나 불평을 하고 원망을 하고 탄식을 하고 그래도 어머니가 꼭 참고 그 아들을 돌봅니다. 그러다가 하루는 어머니가 하는 말이 어떤 사람이 눈 하나를 기증해 주려고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눈 기증을 받으라고 하니까 내가 눈 하나 받아서 뭐하냐 애꾸눈이 되어서 사는 것이 무엇이 좋으냐! 온갖 불평을 말합니다. 그래도 그를 참고 수술대로 데려가서 눈 하나를 기증 받은 것을 그 청년에게 옮겼습니다. 그리고 어느 시간이 지나고 난 다음 붕대를 떼어내니까 그 한쪽 눈이 환하게 보이는데 그 애꾸눈으로 웃고 있는 어머니의 얼굴을 쳐다보니까 어머니가 한 쪽 눈이 없습니다. 그것은 어머니가 자기 눈을 뽑아서 아들에게 준 것입니다. 얘야 내가 두 눈을 다 주고 싶었지만 내가 두 눈을 주고 나서 장님이 되면 한 평생 너에게 짐이 될까 싶어서 내가 한 눈만 뽑아서 너에게 주었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사랑이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어떠한 역경도 오래 참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못된 행실을 오래 참는 것을 보십시오. 히브리서 12장 3절에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예수님이 사랑해서 우리를 참아 주시지 않았으면 여러분 우리는 벌써 벼락을 맞았을 것입니다. 우리도 이웃을 쉽게 심판하거나 정죄치 말고 오래 참고 기도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누가복음 6장 32절에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뇨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느니라”고 말했습니다. 둘째로, 사랑의 요소는 온유하다고 말했습니다. 온유하다는 말은 따뜻하고 부드러운 성품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납고 몰인정하거나 무관심하거나 무뚝뚝한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은 따뜻하고 부드러운 성품을 가진 것입니다. 마태복음 11장 29절에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고 말했습니다.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 이것이 사랑의 마음입니다. 민수기 12장 3절에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온유라고 하는 것은 순종하고 잘 따르는 성품을 말한 것입니다. 지도자나 윗사람에게 불순종하고 반역하는 것, 이것은 사랑이 아닌 것입니다. 디도서 3장 2절에 “아무도 훼방하지 말며 다투지 말며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게 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셋째로, 사랑은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한다고 말했습니다. 나보다 나은 사람을 시기하고 헐뜯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같은 친구의 출세를 가만히 볼 수 없어요, 어찌하든지 물고 늘어지는 것, 이것은 사랑이 아닌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25절로 26절에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고 말했었습니다. 넷째로,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합니다. 자기 자랑이 남에게 열등 의식을 가져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가 잘난 것 있으면 감추어야지 그것을 뽐내면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 열등의식과 좌절감을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 자랑이 많은 사람은 시기하는 원수들을 많이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3장 14절에서 16절에 “그러나 너희 마음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스려 거짓하지 말라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이니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요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랑이 시기를 일으키고 모든 요란함과 다툼을 가져온다는 것을 알고 사랑은 자랑치 않습니다. 다섯째로, 사랑은 교만하지 않습니다. 교만은 남을 멸시하는 행위임으로 친구를 잃어버립니다. 교만한 자가 생기면 그 친구들이 다 떠나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성경은 잠언서 16장 18절에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고 말했습니다. 어느 누구도 자기 성취를 바라보고 잘 났다고 교만하고 어깨를 으쓱이면 그때로부터 내리막길로 가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이 88올림픽 이후로 세계적인 선진국이 된 것처럼 착각을 하고 교만하고 오만하여 관광객들이 세계에 나가서 달러를 물 쓰듯이 쓰고 내 던지고 그렇게 하다가 IMF를 만나서 처절한 좌절을 체험한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여섯째로,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아니합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살면서 친할수록 예의를 지킬 줄 알아야 합니다. 무례히 행하는 남편, 무례히 행하는 아내가 있으면 그 가정은 파멸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IMF 이후 극단적인 부부 싸움 끝에 불의의 사고가 굉장히 많아 졌었습니다. 최근 서울시 119 구급대에 현황을 보면 부부 싸움 끝에 사고가 생겨서 출동한 건수가 97년보다 98년에는 약 500건이 늘어나고 2500여건이었던 것입니다. 응급상황은 부부간에 싸움에 불을 지르고 투신하고 자해, 약물, 구타등으로 나타나는데 특히 부부 싸움중 심한 말을 듣고 화를 못이겨 집에 기름을 부은 뒤에 불을 지르거나 가스를 터뜨리는 등 방화 사건이 70%정도 늘었고 또한 투신, 약물, 자해 순으로 증가했다는 것입니다. 어려울 때 무례히 말을 합니다. 남편도 부인에게 무례한 말을 하고 부인도 남편에게 무례한 말을 해서 격동시켜서 그래서 가정에 파탄을 일으키고 파멸을 가져오는 일들이 많습니다.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않습니다. 가까울수록 예의를 지켜야 합니다. 부모나 스승, 손위의 사람, 그리고 이웃에 예의 바르게 행하는 것이 바로 사랑인 것입니다. 잠언서 21장 24절에 “무례하고 교만한 자를 이름하여 망령된 자라 하나니 이는 넘치는 교만으로 행함이니라”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무례히 행하는 자를 절대로 좋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모든 일에 예의 바르게 행하며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일곱째로, 사랑은 자기 유익을 구치 아니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항상 이웃과 더불어 산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만 좋으면 된다는 상식에 어긋한 짓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사람들이 정말 사랑이 없는 행위를 많이 합니다. 내게만 좋으면 된다. 내게만 편하면 된다. 남이야 어떻게 되든지 상관할 것 무엇이냐! 이렇게 생각합니다. 우리는 더불어 사는 공중도덕을 가르쳐야 합니다. 이것이 사랑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늘 공동의 유익을 도모하는 것이 사랑이지 나 혼자만 좋으면 된다고 하는 이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로마서 13장 10절에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사랑이 있는 사람은 이웃사람에게 고통을 가하지 않습니다. 함께 잘 살도록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테레사 수녀를 보십시오. 그는 가난한 자의 승리였습니다. 97년 9월 6일날 소천했지만 평생 남을 위해 사랑의 본을 보인 그녀가 세운 그 시설만 해도 무려 17개입니다. 기아, 질병, 매춘여성, 각종 환자들에게 무한한 사랑을 그는 부어 주었습니다. 테레사 수녀가 세상을 뜰 때 남긴 유언은 서로 사랑하십시오. 진정한 사랑은 이것 저것을 재지 않습니다. 아무 것도 바라지 않고 사랑을 베푸는 이것이 진실한 사랑인 것입니다. 사랑은 그러므로 자기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항상 함께 더불어 살 수 있는 그러한 마음 가짐을 가지는 것이 사랑인 것입니다 여덟째로, 사랑은 성내지 않습니다. 여러분 성을 내면 타인을 괴롭히고 자기는 비천해집니다. 성을 잘 내는 남편이 있으면 아내와 자식들이 전부 고통을 당합니다. 그리고 성을 내는 그 당사자는 아주 인격이 비천해지고 비열해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성을 냄으로 분위기를 망쳐 놓고 행복을 짓밟아 버리는 그런 가정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러므로 쉽게 성내는 남편, 쉽게 성내는 아내, 자녀들을 가지고 있으면 온 가정의 분위기는 엉망이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19절로 20절에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성을 내면 하나님을 의롭게 하지 못합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물가에서 성을 내고 내가 너희를 위하여 반석에서 물을 낼까 하고서 반석을 쳐서 물을 내었습니다. 성을 내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하기를 네가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지 못했으므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모세같이 위대한 사람도 백성들 앞에서 성을 내니까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권리를 빼앗은 것입니다. 이러므로 사랑은 성내지 아니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홉째로, 사랑은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생각은 인격입니다. 그 사람의 생각이 어떠하면 인격도 그러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잠언서 4장 23절에도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악한 생각은 악한 사람을 만들어 놓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의 생각이 어떠한가를 늘 관심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새가 머리위로 날아다니는 것은 막을 수 없지만 새가 머리 위에 앉아서 여기에 둥지를 트는 것은 막아야 하는 것입니다. 마귀가 우리 머리위로 날아다니는 것은 어찌할 도리는 없지만 마귀가 내 머리 위에 올라앉아 가지고 내 머리를 통해서 온갖 악한 생각을 다 가지고 오는 이것은 우리가 막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오늘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세속적인 사회와 문화 속에 글, 그림, 영상, 매체, 인터넷 등을 통해서 온갖 음란하고 방탕하고 흉악한 것이 많이 나옵니다. 요사에는 TV 보기가 겁이 납니다. 너무나 흉악하고 악한 일들이 많이 영상 매체를 통해서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것이 우리 사회에 꽉 들어찬다고 할지라도 이 악한 생각이 우리 마음속에 들어오지 않도록 물리쳐 내는 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은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 사랑인 것입니다. 열째로,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사랑은 정의의 꽃입니다. 불의한 곳에 미움이 있을 뿐, 사랑이 없습니다. 불의하면 서로 물고 찢고 싸우고 그렇게 하지 않습니까? 요사이 여러분 보십시오. 세 자매가 옷 거래를 하다가 잘못 되어가지고서 거기에 불의가 들어오니까 옛날에 그렇게 친하던 분들이 형님 아우하던 분들이 지금은 원수가 되었습니다. 재판관 앞에서 원수가 되었습니다. 불의한 것에는 미움이 있지 사랑이 없습니다. 사랑은 정의의 꽃입니다. 정의로운 곳에 언제나 사랑이 꽃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불의를 제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몸 찢고 피를 흘려 매달렸습니다. 베드로전서 3장 18절에 “그리스도께서도 한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사랑은 절대로 불의를 기뻐하지 않습니다. 열한번째로, 사랑은 진리와 함께 기뻐한다고 말했습니다. 사랑은 거짓말을, 거짓행위를 기뻐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거짓말을 많이 하고 거짓행위를 많이 하느냐|! 한번 사람이 거짓말을 하면 그 다음에는 참 말을 해도 믿지 않습니다. 어떠한 사람이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거짓말을 하는 것이 왜 나쁩니까? 거짓말을 하면 나중에 그 사람이 참말을 해도 안 믿어주니까 나쁘다고 했습니다. 일단 거짓말을 하면 나중에 그 사람이 진실되고 참 말을 해도 안 믿어줍니다. 사람이 불신 인간이 되면 버림받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사랑은 거짓말을, 거짓 행위를 기뻐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속이지 않아요. 에베소서 4장 25절에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 진리를 따라 살면 손해를 보고 유익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그러나 오늘 이 사회를 이렇게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은 거짓말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거짓 문서 사건 때문에 청와대까지 떠들썩하지 않습니까? 거짓은 불신을 가져오고 불신은 파멸을 가져오고 마는 것입니다. 사랑은 진리와 함께 기뻐하지 거짓과 함께 기뻐하지 않습니다. 열두번째,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견딘다. 이것은 사랑의 총 결론입니다. 사랑은 언제나 종국적인 선을 바라보고 결과에 가서는 하나님과 같이 계심으로 합동하여 유익이 될 것이다. 그래서 현재의 어려움을 꾹 참고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룰 것을 끝까지 믿고 시련과 환난에 굽히지 않고 인동초처럼 견디어 내는 것이 사랑인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사랑은 오래 오래 모든 것을 참아야 사랑입니다. 성급하게 하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모든 것에서 종국적으로 좋아질 것을 믿는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리고 사랑은 끝까지 견뎌내는 것입니다. 쉽게 낙심해서 죽지 않습니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일본 사람이 집을 짓는데 일본 사람은 집을 지으면 바깥벽 안벽을 서로 흙을 바르고 가운데를 터놓습니다. 그런데 10년 전에 집을 지었다고 벽이 헐어서 벽을 들어보니까 도마뱀 한 마리가 그 벽 가운데 있는데 그 벽을 만들 때 못을 친 것이 못이 도마뱀 윗 꼬리 부분을 뚫어서 쳐버렸습니다. 그 도마뱀이 그 벽안에 10년 동안 갇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도대체 도마뱀이 꼬리에 못이 박혀서 10년 동안 어떻게 살았는가 가만히 보니까 그 못 박힌 도마뱀이 수컷이었는데 암 도마뱀이 10년 동안 먹이를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래서 살아 있었습니다. 도마뱀도 여러분 수컷이 꼬리가 못 박히니 암컷이 10년 동안 오래 참고 살아날 것을 기대하며 견디고 먹을 것을 갖다 주고 살려 주었는데 우리 사람들이야 말할 것이 없지 않아요? 이와 같은 우리가 인내력을 가지고 믿음을 가지고 견디면서 살아나가야 하는 것이 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사랑의 요소는 참으로 심오합니다. 요한1서 4장 8절에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고 말했었습니다. 로마서 5장 5절에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의 가슴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들어오면 이와 같은 사랑의 성품이 살아 역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어떤 일을 당해도 늘 자기에게 타일러야 합니다. 그래도 사랑해야지. 이 놈의 자식 당장 죽여 버리고 싶다. 그래도 사랑해야지, 그 자식 다시는 만나기 싫다, 그래도 사랑해야지. 원수야, 원수야 뭐 저런 원수가 있어 그래도 사랑해야지. 여러분 사랑해야 합니다. 여러분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이 우리 삶의 근본 바탕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미운 사람이 없을 수가 없습니다. 미운 사람이 있고 싫은 사람이 있고 보기 싫은 사람이 있고, 쥐어박고 싶은 사람이 많아요. 그러한 것은 우리들이 일반적으로 느끼는 감정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늘 말해야 할 것은 그래도 사랑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오 주 예수여 제게 사랑을 실천하며 살게 하여 주옵소서. 이 두 가지 상황을 여러분 늘 실천하십시오. 부부간에 싸움이 붙어서 저 여자하고 이혼해야지. 저 남자하고 살지 못하겠다. 그대로 사랑해야지. 하나님 아버지여 나는 못합니다. 내게 사랑을 부어 주시옵소서. 그러면 마음이 달라집니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고 했는데 원수가 주리고 목마른데 어떻게 마시웁니까? 그래도 사랑해야지 주여 나는 못합니다. 주께서 사랑을 부어 주시옵소서. 사랑만이 최후의 승리와 행복과 기쁨과 삶의 가치와 영광을 가져오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라고 말했습니다. 얼마나 못되게 굴고 죄 짓고 반역하고 반항하고 추악하고 더러운 인생들을 하나님은 사랑하사 예수님을 보내셔서 십자가에 못 박아 몸을 찢고 피를 흘려서 구원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결국 모든 행복의 기초가 사랑에 있기 때문에 사랑을 제켜 버리면 부귀와 영화와 공명, 권력이 있어도 그것은 헛되고 헛되며 무가치하고 의미가 없는 행복이 없는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여러분 우리 마음속에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서 우리가 기쁘기 위해서 우리가 잘 살기 위해서라도 사랑을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남에게 유익을 주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먼저 내 자신이 기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사랑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령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의 태도와 자세만 올바르게 가지면 이 사랑을 언제나 하나님은 공급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 태도를 가지기 위해서 여러분들이 늘 자신을 타일러야 합니다. 그래도 사랑해야지. 그러면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성령으로 말미암아 사랑을 부어주실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의 사랑을 받아서 우리는 늘 사랑하면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며 사는 그곳에 믿음도 소망도 행복도 있고 기쁨도 있고 여러분에게 성공도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 거룩하시고 영광스러우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여. 우리는 사랑을 하고 살아야만 하는데 사랑을 하지 못하고 살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 가슴속에 사랑보다는 미움이 많고 불행이 많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오늘 간절히 기도하고 원하오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고 도와주셔서 그래도 사랑하고 살게 도와 주시옵소서. 우리의 마음을 열고 사랑 없음을 고백하고 주님을 앙망하오니 주여 그리스도의 사랑을 우리의 마음속에 부어 주시옵소서. 사랑으로 보고 사랑으로 듣고 사랑으로 생각하고 사랑으로 말하고 사랑으로 행동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여, 그래도 사랑해야만 합니다.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우리 모두에게 부어 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을 따라서 사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