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2월 5일
제목: 육체의 일
성구: 갈 5:19-21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육체의 일”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인간은 원래 신령한 사람으로 살도록 지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고 하나님과 교통하는 인간은 신령한 존재로 만들어졌습니다. 육체란 영혼이 거하는 집으로 타락하기 전에는 육체는 전적으로 영혼의 명령에 순종하는 그릇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아담이 타락하여 하나님께로부터 쫓겨나자 영이 죽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즉 다시 말하면 영이 하나님과의 교통이 끊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인간은 존재적인 이유와 목적과 삶의 방향 감각을 완전히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과의 교통이 끊어지니까 사람이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를 다 잊어버리고 말았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육체적인 존재로 전략하고 육체의 감각의 포로가 되고 말았습니다. 인간 육체는 마귀의 종이 되고 돌이킬 수 없는 부패 속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때로부터 인간은 육체의 온갖 부패한 욕구에 끌려 다니며 살아오고 있습니다.
노아 홍수 때도 그 당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던 셋의 후손들이 온전히 타락한 가인의 후손 딸들과 결혼하여 육체적인 인간으로 타락하자 하나님의 성령이 인간을 버리고 홍수로 세계를 멸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창세기 6장 1절로 8절에 그 사실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神)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 이십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당시에 땅에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하여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이 용사라 고대에 유명한 사람이었더라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 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여기에 보십시오. 하나님의 아들들이 세상으로 완전히 타락한 딸들과 결혼해서 육체가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영적인 세계는 완전히 다 던져 버리고 육체가 됨으로 하나님은 진노하사 그 육체를 홍수로써 멸해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도 역시 한 가지입니다. 그곳 주민들이 온전히 육체가 됨으로 죄악이 가득하여 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 유황비를 내려 그들을 멸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유다서 1장 7절로 8절에 보면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저희와 같은 모양으로 간음을 행하며 다른 색을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 그러한데 꿈꾸는 이 사람들도 그와 같이 육체를 더럽히며 권위를 업신여기며 영광을 훼방하는도다 "
오늘 우리들의 시대도 이제 점점 노아의 때와 같고 소돔 고모라같은 형편으로 변화되어 사람들이 육체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심판할 날도 가까워 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때일수록 우리의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를 십자가에 못박고 매일매일 구원의 길을 힘차게 달려가야만 할 것입니다.
유다서 1장 17절에서 21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의 미리 한 말을 기억하라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마지막 때에 자기의 경건치 않은 정욕대로 행하며 기롱하는 자들이 있으리라 하였나니 이 사람들은 당을 짓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은 없는 자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육체의 일이란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일까요? 오늘 갈라디아서에 기록한 것을 보면

첫째로, 성적인 타락이 육체의 일의 가장 현저한 사건입니다.
성적인 타락은 어떠했을까요? 갈라디아서에 보면 음행이 성적인 타락이요 육체의 일이라고 말합니다. 음행은 결혼이 아닌 성적인 관계나 매춘행위를 말합니다. 여러분 오늘날 우리 사회에 얼마나 육체의 일인 성적인 타락이 관영하는지 형용할 수가 없습니다. 소위 말하는 원조교제란 청소년 매춘 행위가 어린 소년 소녀 가운데까지 행해지고 있습니다. 원래 일본에서 어린 학생들과 행하던 일을 미화시킨 범죄행위를 말하는 것인데 우리 나라에도 원조교제라는 이름으로 3명중 1명은 여중생인 미성년자를 상대하고 있습니다. 30대나 20대 40대 순서의 남성들이 여중생을 더불어 원조교제란 면목으로 성적인 방탕한 행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개방적인 10대가 성의식이 없고 돈에 미혹된 그러한 상황 속에서 성인들이 어린아이를 꾀어서 성적인 타락을 이끌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온 우리 한국사회와 세계가 육체로 변화되어가고 있는 상황인 것입니다. 여러분 여중생이 초등학생과 마을 선후배들을 폰팅업자와 짜고 원조교제에 끌어들여 윤락을 알선하고 경찰에 잡힌 사건들이 신문에 나고 있는데 그곳에 잡혀온 어린아이들이 조금도 반성하는 모습이나 죄책감이 없다는 것이 오늘날 우리들의 현실에 큰 고통인 것입니다. 우리나라 매춘업소만 하더라도 40만곳, 무허가를 포함하면 년간 매춘을 통해서 거래된 돈이 43조원 가량이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얼마나 무시무시한 음란의 사회가 우리 한국에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최근에 인터넷 웹사이트에 올린 부부 교환 광고를 보고 충격을 받고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공공연하게 웹사이트에 부부를 서로 나누어가지자 이 지치고 피곤한 사회에 한 부부간에 살 필요 있겠는가 그런 광고가 나왔습니다.
수많은 술집, 싸롱, 유원지에 섰다 하면 러브호텔. 이 모든 것이 인간을 육체화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우리에게 가까이 오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최근에 여고생들끼리 술집을 차려서 성행하다가 경찰에 잡힌 사건이 있습니다. 또 오늘날 많은 술집에서 초등학생을 고용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서울 근교에만 해도 여러분 술집이 2천 6백여개가 있고 시내 여관들도 가세하여 매춘과 불륜에 빠진 현실인 우리나라가 되어 있습니다. 이와같이 도덕적인 제동이 완전히 풀린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6장 18절에는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게 죄를 범하느니라”
고린도전서 3장 17절에는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 육체의 일은 더러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사람들이 오늘날 시시각각으로 더러운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하는 말 중에 더러운 말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더러운 귀신이 사람들에게 와서 더러운 생각을 하게 하고 더러운 말을 하게 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이 세상은 이 더러운 귀신으로 꽉 들어차 있습니다. 사람들은 더러운 행위를 서슴치 않고 행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5장 3절로 4절에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의 마땅한 바니라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더러운 생각을 하고 더러운 말을 하고 더러운 행동을 할 때는 더러운 귀신이 우리를 부여잡고 우리를 타락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단호하게 주 예수의 이름으로 이 더러운 귀신을 내어 좇아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육체의 일은 또 호색하는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호색의 홍수 속에 빠져있습니다. 출판물을 통한 호색, 비디오를 통한 호색, 인터넷, TV, 영화, 주위 환경이 호색으로 유혹하는 무서운 함정이 되어 있습니다. 전국적으로 비디오방이 약 3천 개가 있습니다. 거의 남녀가 그 비디오방에 가서 성적인 접촉 장소로 이용하고 있는데 고교생들의 63%가 비디오방에 간 경험이 있다고 말하며 성인 85%가 비디오방에 간 경험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여러분 비디오방이라는 것이 한국 사회에 성업하고 있는 영업이 얼마나 더럽고 추한 곳이라는 것을 우리가 잘 알 수가 있습니다. 국감자료에 의하면 PC통신 음란 정보는 1월부터 8월간에 약 21만건이 넘어 섰습니다. 이 PC방을 통해서 불건전한 이성의 만남을 유도하고 가정을 파괴하고 사회를 음란의 수렁으로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소설, 비디오, TV, 영화 등이 불륜을 미화시키고 있습니다.
미국의 잡지조사 결과에 보면 응답자의 3분지 2는 TV가 사회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고 그들을 대답을 했습니다. TV의 선정성이 혼외 정사를 84% 가량 증가시켰습니다. 즉흥적인 성행위를 83%나 증가시키고 청소년 성문제의 타락을 90%나 유도하고 여성 성폭력을 94%나 일으킨 그러한 악을 행하고 있다고 발표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신세대의 주부의 60% 정도가 결혼후에도 남자친구를 계속 사귀기를 원한다는 그러한 조사결과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성령 바람이 불어오지 아니하면 오늘 우리 한국 사회 뿐 아니라 온 세계는 이 음란과 더러움과 호색의 수렁에 빠져서 결국에는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불의 심판을 받고야 말 것입니다.
이 세상이 왜 심판을 받게 되느냐 그것은 온 세계가 육체가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떠나고 완전히 사람이 육체가 됨으로 하나님이 이 세상 사람들과 더 같이 거하실 수가 없게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골로새서 3장 5절에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고 말했었습니다.

둘째로, 육체의 일은 마귀와 교제를 하는 것이 육체의 일인 것입니다. 즉 우상 숭배는 바로 육체의 일입니다. 우리는 성경말씀에 보면 십계명중에 제1계명과 제2계명 모두다 우상 숭배에 대해서 경고하고 있습니다. 네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마라, 우상에 절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보이는 우상과 보이지 않는 우상이 있습니다. 보이는 우상은 금이나 은이나 돌이나 나무로 만든 우상에 절하는 것이지만 보이지 않은 우상은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모든 것을 그 우상에게 바치는 그러한 일들이 있습니다.
골로새서 3장 5절로 6절에 보면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고 말했었으며
에베소서 5장 5절에 “너희도 이것을 정녕히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은 정치적인 권력을 위해서 모든 것을 그 앞에 다 바치고 지위나 명예를 위해서, 쾌락을 위해서 모든 것을 그 앞에 다 바치고 거기에 절하는 우상숭배를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경배하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세상에 탐욕을 먼저 구하고 탐욕에 엎드려 절하면 탐욕을 섬기면 그것은 중대한 우상 숭배가 되는 것입니다. 이 우상 숭배는 육체의 일이요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 육체의 일은 술수라고 말했습니다. 점치고, 사주팔자보고, 기복 기원하고 무당 굿하는 것을 말하는데 선, 후진국 할 것 없이 이 술수가 꽉 들어차 있습니다. 96년 우리나라 무속인 수는 등록한 수만 하더라도 전국적으로 50만 명이 되는 것입니다. 점치는 집, 허가한 곳만 해도 만 천 곳, 무허가 다 합치면 부지기수로 점쟁이들과 점치는 집이 많습니다.
레위기 20장 27절에 “남자나 여자가 신접하거나 박수가 되거든 반드시 죽일지니 곧 돌로 그를 치라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하나님께서는 이 술수를 절대로 용납하지 않습니다. 이 술수는 바로 육체의 일인 것입니다.

셋째로, 인간적인 갈등도 육체의 일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적인 갈등은 무엇입니까? 원수를 맺는 것, 육체의 일이라고 말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쉽게 원수를 맺고 좀처럼 화해하지 않습니다. 끝까지 대결하며 복수하려는 태도, 이 원수를 맺는 것은 육체의 일이요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입니다.
그 다음 분쟁이 육체의 일입니다. 대화와 타협을 버리고 흑백논리로 끝까지 싸우는 것입니다. 끝까지 나만 옳고 너는 틀렸다. 그래서 물고 늘어지고 싸우는 것, 이러한 사실은 우리 한국 사회에서 정치적인 것으로 얼마든지 보지 않습니까? 끝까지 분쟁을 하고 타협을 할 줄 모릅니다. 이것은 육체의 일입니다. 이것은 절대로 하나님께서 축복하지 않습니다.
그 다음에는 시기와 질투도 바로 육체의 일인 것입니다. 여러분 시기는 마음의 질투이나 그러나 이 시기를 통해서 수많은 불행과 파괴와 좌절과 절망이 다가옵니다. 사람은 상대를 시기해서 온갖 있는 말 없는 말을 다 만들어 내며 모략과 중상을 합니다. 우리 한국사회에 이 모략과 중상이 모두다 시기와 질투로 말미암아 일어난 것입니다. 이것은 육체의 일인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분을 내는 것도 육체의 일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4장 2절로 3절에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말했었습니다.
빌립보서 2장 5절에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라고 말했었습니다. 참을성이 없이 분을 내지 말고 우리 마음속에 서로 용납하고 겸손히 여기라고 성경은 격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분열하는 것, 즉 분리하는 것, 이것이 넷째로 육체의 일인 것입니다. 우리가 화합하지 못하고 분열할 때에 이것은 육체의 일인 것입니다. 육체의 일, 분열함은 우리가 대중과 서로 합치지 않고 서로 분리하는 것, 전체를 보지 않고 자기 개체를 보는 그런 집단 이기주의, 이것은 육체의 일인 것입니다. 자기의 소수의 욕망만 주장하고 그래서 데모를 하고 전체의 이익을 보지 않고 소수의 이익만 바라보는 이러한 분리주의가 우리 한국 현실사회에도 얼마나 많습니까? 지금 지방 자치제가 되고 난 다음에는 어떠한 일도 할 수가 없습니다. 집단 이기주의로 들고 일어나서 그냥 데모하고 반대하고 조그마한 집 한 채도 올바르게 지을 수가 없습니다. 더구나 지역주민들이 들고 일어나서 무조건하고 데모하고 돈 내 놓으라고 하고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육체의 일인 것입니다.
그 다음 당을 짓는 것, 이것은 육체의 일이라고 말합니다. 단체 안에서 패거리를 만들어 대결하는 것입니다. 이 당을 짓는 것을 하나님은 노하십니다. 이것은 단결을 해치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 한국을 보면 동서가 나누어져 있습니다. 어디를 가더라도 동서가 나누어진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성령이 한국에서 역사하지 못하게 하는 거대한 장애물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동서로 나누어져서 패거리를 짓고 당을 짓는 것은 절대로 용납해서는 안됩니다. 이것은 육체의 일인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심판 받는 일인 것입니다. 그래서 고향이 같다, 학연이 같다, 지연이 같다, 씨족 등으로 뭉쳐서 세력화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우리 조국과 민족 가운데 있어서는 안됩니다. 고향이 같으니까 무조건하고 뭉치자, 학교가 같으니까 서로 뭉치자. 같은 지연이 있고 씨족들이니까 우리들끼리 뭉치자. 이렇게 하면 나라가 온통 다 분열되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분열하는 것으로 육체의 일이지 성령이 하는 일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조차 당을 짓는 형태가 많습니다. 그래서 많은 교회가 무너집니다. 예수께서 피로써 값주고 사신 몸된 교회가 왜 무너집니까? 사탄이 들어오고 육체의 일이 일어나서 당을 짓기 때문에 교회가 분열됩니다.
유다서 1장 19절에 “이 사람들은 당을 짓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은 없는 자니라”고 말했습니다. 성령이 있는 사람들은 절대로 당을 짓지 않습니다. 분열하지 않습니다. 성령은 하나되게 하십니다. 그러나 사단이 들어오면 육체의 사람을 모아서 교회를 찢어버리고 단체를 찢어버리는 것입니다.
로마서 2장 8절에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시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몸된 교회에 당을 짓고 패거리를 만들면 하나님께서 노와 분으로 그를 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피로써 산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는 전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령을 거역하면 하나님께서 저를 멸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분열은 이단을 가져와서 교회를 분열하는 무리들이 있습니다. 그 이단이란 진리를 잘못 가르치고 자기의 탐욕을 중심으로 진리를 가르쳐 사람들을 끌어내어서 그들을 망칩니다. 집안을 파멸시키고 그들의 재산을 빼앗는 이단과 이러한 일들이 우리 한국 사회에도 굉장히 많이 있지 않았습니까?
요한 2서 1장 10절로 11절에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예하는 자임이니라” 이단과 사슬의 그 집회에 우리가 참여하는 것, 그 자체도 하나님께서는 옳다고 말씀하지 아니한 것입니다.

여러분 그 다음 다섯째로 도덕적인 문란을 육체의 일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도덕적인 문란은 무엇입니까? 그 도덕적 문란 중에 술취함을 제일 먼저 뽑고 있습니다. 오늘날 남녀 음주자들이 굉장히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냥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폭주를 하고 술을 취하여서 도덕적으로 문란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끄러운 세계 1위가 많습니다. 발표에 보니까 음주가 우리 한국 민족이 세계에서 제1위라고 말했습니다. 가장 세계에서 술 많이 마시는 민족이 우리 대한하고도 민국입니다. 그 다음 세계에서 담대 제일 많이 피는 나라 일등이 우리 대한민국입니다. 그래서 담배를 피워서 연기로 수조원의 돈을 날리고 폐암에 걸리고 절단나는 것입니다. 요사이 내가 안수 기도하면 너무나 놀라운 것은 수많은 사람들이 폐암에 걸려서 제게 안수기도 받으러 온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담배 연기를 피워서 페암에 걸려서 옵니다. 담배를 피지 않는 부인들이 폐암에 걸려서 오는 것이 많습니다. 남편들이 집에서 자꾸 담배 피워서 간접 흡연으로 폐암에 걸려서 오는 것입니다. 너무나 불쌍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이것도 우리가 너무나 너무나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리고 세계 일등이 있습니다. 교통사고로 죽는 것이 세계에 일등입니다. 이런 일이 있습니다. 술을 세계에서 제일 많이 마시고 담배 제일 많이 피우고 자동차로 죽이기를 제일 많이 하고 이런 수치스러운 기록을 우리가 봅니다. 이것은 바로 육체의 일이 현저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만큼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육체를 따라가는 우리 민족이라는 것을 성경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모든 문란이 술취함에 있습니다.
노아의 술취함을 보십시오 노아가 술에 취하고 난 다음에 옷을 벗고 누워있는 것을 그의 아들 함이 보고 흉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셈과 야벳은 뒤 걸음질 쳐서 옷으로써 아버지의 몸을 덮어주었습니다. 아버지가 술에서 깨어나고 난 다음 이 말을 듣자 그는 진노해서 아들들의 운명을 그르쳐 놓았습니다. 셈의 하나님을 찬미할지어다, 그리고 하나님은 야벳을 창대케 하사 샘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아버지의 벌거벗은 것을 보고 웃은 함은 종 중의 종이 되라고 말했습니다. 자기가 술을 취해놓고 그 흉보았다고 아들만 박살이 난 것입니다. 노아는 가정의 제사장이기 때문에 노아가 그렇게 저주하니까 여러분 함은 종 중의 종의 생활을 하는 것을 역사적으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에베소서 5장 18절에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방탕함은 우리의 삶의 질서를 무시하는 것이 방탕함입니다. 부모 공경을 하지 않습니다. 질서의 무시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가 세상에서 잘되고 장수하리라고 했는데 부모를 공경하지 않고 오늘날 핵가족 때문에 부모가 살던 죽던 내 던져 놓고 우리끼리 살자 이것은 방탕함입니다. 오늘 아침 우연히 일어나서 노인 생활이라는 TV 프로그램을 보니까 거의 요사이 핵가족 제도의 삶을 살면서 노인들의 생활을 도와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루에 천 원을 쓸 수 있는 노인이 별로 많지 않습니다. 그렇게 노인들이 궁핍하고 생활에 어려움에 처해 있습니다. 자녀들이 노인들의 생활에 대해서 무관심합니다. 노인들의 소원이 뭐냐 하니까 자녀들이 한 달에 30만원만 주면 좋겠다. 아들 딸 합쳐서 30만원만 줘서 하루에 친구들하고 만원만 쓸 수 있으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겠다. 상황이 그렇습니다. 우리나라는 노인복지사회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정부에서 연금이 안 나오기 때문에 자녀들에게만 의지하는데 이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것은 방탕함에 이르게 하는 삶인 것입니다.
그리고 손위를 존경하지 않습니다. 선생이나 이웃이나 손위를 존중하지 않고 무시합니다. 이것은 방탕인 것입니다. 사회 법질서 존중이 사라지매 오직 물질, 권력, 쾌락, 만능주의가 우리 사회에 꽉 들어차 있습니다.
로마서 13장 12절로 14절에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새로운 천년이 다가오는 이 새로운 천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기 직전인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에게 새로운 천년이 특별히 의미가 있는 것은 우리들에게는 이제 이 땅을 떠나서 새 하늘과 새 땅과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기약이 이루어진 새 천년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는 육체의 일을 버리고 주님 중심으로 서서 나가는 삶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육체의 일은 성적인 타락이 그 첫째이고 마귀와의 교제가 그 둘째이고 인간적인 갈등이 그 셋째고 분열이 그 넷째고 도덕적인 문란이 다섯째인 것입니다. 이와 같은 것들이 육체의 속성입니다. 성경에는 이런 일을 하는 자들, 거리낌없이 이런 것 속에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그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의 후손들이 육체가 되었을 때 멸하고 소돔과 고모라도 육체가 되었을 때 멸하였는데 오늘날도 육체가 된 인간은 멸하시고 하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성경은 갈라디아서 5장 24절에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4장 3절로 5절에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좇아 행한 것이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 이러므로 너희가 저희와 함께 그런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지 아니하는 것을 저희가 이상히 여겨 비방하나 저희가 산 자와 죽은 자 심판하기를 예비하신 자에게 직고하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란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와 대결하여 싸우는 것입니다. 이 싸움은 이미 이겨 놓은 싸움인 것입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이미 육체를 십자가에서 정복해 버렸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성령이 있고 기도에 힘쓰며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고 마귀와 육체를 대항하여 끊임없이 싸워야 되는 것입니다. 싸우는 자는 살아 있으나 싸움을 포기한 자는 영적으로 죽은 자인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육체에 대해서 대항하지 아니하고 싸움을 포기하고 육체에 떠내려가고 있습니다. 교회는 와서 형식과 의식은 다 지키지만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에 대해서 대항하지 않습니다. 그대로 떠내려갑니다. 그 사람들은 이미 죽은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나 끊임없이 이 세상 속에 살면서 회개하고 눈물로 기도하며 육체를 대항하여 싸우고 몸부림치는 사람은 살아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영혼이 살아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십자가를 의지하여 하루 하루 육체를 더 이기고 육체를 벗어버리고 신령한 삶으로 전진해 나가다가 주님 오시는 그날에 들려 올라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타락한 아담의 후예로 살고 있습니다. 육체가 우리를 끊임없이 마귀와 세상으로 끌고 갑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거듭난 영혼이 성령과 더불어서 끊임없이 육체와 싸워 육체를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리고 위로 하늘 나라를 향해서 걸어갑니다. 오늘 이 세상에는 육체가 된 사람들과 신령한 사람들로 나눠지고 있사옵니다. 아버지여 예수를 믿고 거듭난 신령한 사람들은 육체를 싸워 이기고 육체에 대항하여 싸우며 나아갑니다. 믿지 않는 사람은 육체의 사람이 되어 육체와 마귀를 쫓아 떠내려가 버리고 맙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여 새천년, 주님 오실 날이 눈앞에 가까워온 이 시점에 온 세계는 노아의 홍수 때와 같고 소돔과 고모라와 같이 되어서 하나님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을 따름입니다. 그 심판의 벌에 함께 따르지 않게 도와 주시옵시고 육체의 사람을 완전히 벗어버리고 신령한 사람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동행하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