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2월 19일
제목: 용서
성구: 마 18:21-35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용서”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우리는 용서라는 말을 할 때는 항상 거창스런 죄나 잘못에 대한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용서는 그런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매일매일 서로 실망하고 미워하며 분노하고 모욕감을 느끼며 마음에 상처를 받고 상처를 입히는 일들에 관해서는 용서라는 말을 꺼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같은 작고 사소한 일들이 마음에 독감을 일으키고 미움과 분노를 지속시키며 마음의 행복과 평화를 망쳐 버립니다. 그 때문에 우리는 용서라는 마음의 결단을 매일 같이 내려야만 합니다. 용서하기로 작정하고 그 힘을 얻기 위하여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해야만 합니다. 용서란 때린 사람이 하기에는 쉽지만 맞은 사람이 하기란 심히 힘이 듭니다. 그러나 용서하지 않고는 우리 영혼 속에 깊은 상처가 치료함 받지 못합니다.
나는 미국의 어떤 가정에서 외독자를 길렀는데 그가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술취한 자동차에 치어서 죽었습니다. 그 결과로 그 부모님들의 상심은 이로 말로 다 할 수 없었는데 술 취해서 인도로 뛰어 들어와 그 아들을 치어 죽인 장본인은 경찰에 잡혀서 재판을 받고 감옥에 들어갔으나 얼마 있지 않아서 석방되어 나왔습니다. 마음에 너무나 큰 분노와 고통을 느낀 그 부모는 권총에 총알을 장전해서 감옥에서 나오는 사람을 저격했습니다. 그런데 총이 맞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총을 쏜 그 죽은 아들의 아버지는 살인미수죄로 체포가 되고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부인은 너무나 분노해서 몸부림치다가 정신병자가 되어서 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온 가정이 파탄에 이른 사실을 읽어보았습니다. 아들만 죽었을뿐 아니라 그 마음속에 일어나는 분노하는 마음, 이것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용서로써 제하지 못하고 난 다음, 이 분노가 온 가정을 파탄에 이르게 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에는 일만 달란트 빚진 자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임금님이 자기의 모든 빚진 자들을 불러 놓고 빚을 청산하는데 가장 많이 빚진 사람이 일만 달란트 빚을 졌습니다. 일만 달란트라고 하면 일반 노동자 5천명이 1년 동안 버는 돈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그 돈을 갚을 힘이 없으니까 임금이 명하기를 이 사람의 몸도 팔고 처자도 팔고 있는 것 다 팔아서 갚도록 하라 그러나 이 사람이 무릎을 꿇어 통곡을 하고 울며 살려달라고 하매 왕이 불쌍히 여겨 온 빚을 탕감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밖에 나가니까 자기에게 불과 일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만났습니다. 내 빚을 갚아라 시간을 주면 갚겠으니 용서해 달라고 하니까 용서해 주지 않고 감옥에 가둬 버렸습니다. 이 사실을 임금에게 고하니 진노해서 일만 달란트 탕감해 준 사람을 불러서 내가 네가 간구하기에 일만 달란트의 빚을 탕감해 주었는데 너에게 100데나리온 빚진 너희 동관도 네가 불쌍히 여기고 탕감해 주어야지 마땅하지 않느냐? 이 사람을 감옥에 가두고 그 빚을 갚을 때까지 고생을 시키라고 명령을 내린 기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볼 때에 용서받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속에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이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수많은 죄를 용서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보내시사 십자가에 못 박게 하시고 몸을 찢고 피를 흘리게 한 것입니다. 용서받는 자가 희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용서하는 자가 오히려 십자가를 걸머지고 몸을 찢고 피를 흘려서 우리의 죄악을 용서한 것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얻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 우리 무리의 죄악을 저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 53:5-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용서하기 위해서 우리 대신 혹독한 고통을 당하고 대가를 지불한 것입니다. 이 임금님도 보십시오. 일만 달란트 빚진 사람을 탕감해 주기 위해서는 자기 재산에서 일만 달란트 손해를 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용서받는 자가 고통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용서해 주는 자가 용서하기 위해서 큰 부담을 감당하고 희생을 당하고 손해를 보면서 용서를 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용서를 받은 사람은 그러므로 어디에 가든지 용서해 줘야 될 빚을 걸머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일만 달란트의 용서를 받은 사람은 100데나리온 빚진 자기의 동료를 용서해줘야 될 의무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가 용서받았으니 남을 용서해 주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하나님께 수없이 많은 죄를 용서받았으므로 우리 이웃의 죄를 용서해줘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용서해주지 못하면 늘 이웃을 비난하고 공격하며 모욕하고 이웃의 상처를 입히려고 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용서하지 못하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용서도 취소됩니다. 이 사람 보십시오. 일만 달란트 용서 받았지만 100달란트 빚진 동료를 용서해주지 못하니까 하나님께서 일만 달란트의 용서도 다 취소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 이웃의 지은 죄를 용서해주지 아니하면 하나님도 우리의 죄를 용서한 것을 취소해 버리기 때문에 우리와 하나님과의 사이에 화해가 무너지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두절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8장 35절에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요한1서 3장 15절에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고 말했었습니다.
최근에 신문을 보니까 교황이 내년 3월에 용서를 구하는 참회의식을 주재하겠다는 발표를 했습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로마 카톨릭 교회가 과거사에서 잘못을 저지른 부분에 대하여 내년 3월에 공식적으로 잘못을 인정하는 교황 칙서를 발표하고 성 베드로성당에서 참회의식을 갖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유대인에 대한 신약 성경을 부당하게 해석해서 유럽에서 발생한 박해를 저지하지 못한 죄를 공개적으로 회개하겠다는 것입니다. 19세기 전반까지 종교 재판에서 자행했던 가혹한 행위도 용서를 구할 작정이라고 말했었습니다. 교황은 이전에도 여러번 십자가 운동 때에 잔인성 여성에 대한 부당한 대우, 지동설을 주장한 갈리레이에 대한 잘못된 재판 등에 대해서 용서를 구한 바가 있습니다. 오늘날 카톨릭 교회에도 역사를 통해서 세계에 저지른 잘 못을 공식적으로 회개하고 용서를 구해왔던 것처럼 우리들은 우리의 마음속에 예수 그리스도에게 받은 용서를 반드시 이웃에 갚아야 된다는 빚을 짊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일 용서하지 못할 때에 우리는 용서받은 죄가 취소를 당하고 많은 고통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보십시오 일만 달란트 용서받은 사람이 자기 동관 100데나리온 빚진 자를 용서하지 못하자 그의 용서받은 일만 달란트가 취소되고 그는 감옥에 갇혀서 고통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용서하지 못할 때에 우리는 마음에 깊은 고통과 괴로움과 고문의 감옥 속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1서 2장 11절에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두운 가운데 있고 또 어두운 가운데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어두움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니라”
마태복음 18장 22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번이라도 할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용서하지 아니하면 마음속에 미움이 늘 남아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미움과 분노와 복수심이 우리의 육체 속에도 치명적인 질병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잠언서 17장 22절에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고 말했습니다. 어느 병원에 한 젊은 대학생이 와서 치료를 받는데 그는 무시무시한 위궤양을 앓고 있었습니다. 출혈성 위궤양으로 많이 토하고 음식을 먹지 못하고 몸부림을 쳤습니다. 의사가 아무리 치료해도 약효가 없었습니다. 그 의사는 좋은 크리스챤입니다. 하루는 그 환자와 함께 카운셀링을 하는 중에 혹시 당신이 미워하고 용서해 주지 못하는 사람이 있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자기의 할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농토가 부자집 곁에 있었는데 거기에서 측량을 잘못 해가지고서 자기 할아버지가 가진 땅을 더 많이 점령했다는 것입니다. 할아버지가 너무 원통해서 항의하는데 밭에서 그를 밀어서 할아버지가 낭떠러지에 떨어져서 죽었습니다. 그러나 힘이 없고 능력이 없으니까 어디 호소할 데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청년은 결심을 하고 대학에서 법과를 졸업을 하고 그는 판사가 되어서 반드시 할아버지의 원한을 갚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절치부심하면서 공부를 해서 대학교 법과에 합격하고 공부를 했지만 매일 같이 그 마음속에 끓어오르는 분노와 원한이 위궤양을 일으키고 만 것입니다. 그래서 출혈성 위궤양으로 죽게 된 것입니다. 그때 의사가 말했습니다. 당신이 그 미워하는 사람을 용서해 줘야만 비로소 약효가 있고 당신이 치료함 받을 수 있습니다. 나는 그렇게 못합니다. 그렇게 못하면 당신의 분노가 결국 당신을 죽이고 말 것이다. 나중에 너무 고통스러우니까 의사 앞에 와서 죄를 회개하고 미워한 것을 다 용서한다고 기도하고 하나님께 용서할 수 있게 도와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고 그 마음에 쓰디쓴 뿌리를 뽑아 내었습니다. 그 결과로 얼마 있지 아니하여 위궤양이 깨끗이 나았고 건강을 회복했다는 기록을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가 용서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살아 남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우리는 반드시 용서를 실천하고 살아되는 것입니다. 용서하지 아니하면 하나님과 우리와의 막힌 담을 헐어 버릴 여지가 없습니다.
요한 1서 9절에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라고 한 것입니다. 우리가 용서하지 아니하면 우리의 죄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담이 막혀 있어서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께 나아가려고 해도 나갈 수가 없고 부르짖어도 하나님이 응답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마음이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으로 담벽을 쌓아 버리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과 우리가 교통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야 하고 하나님의 용서를 받기 위해서는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자신이 마음의 미움과 분노와 고통에서 해방되기 위해서는 용서해 주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잠언서 24장 29절에 “너는 그가 내게 행함 같이 나도 그에게 행하여 그 행한대로 갚겠다 말하지 말지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내가 항상 원한을 품고 남에게 원수를 갚겠다고 생각하고 있으면 밥을 먹어도 맛이 없고 잠을 자도 평안하지 아니하고 길을 걸어가도 안심되지 않고 언제나 분노의 흙탕물이 끓어올라서 영혼 속에 큰 고통과 괴로움을 겪습니다. 미움을 마음에 품고 있는 이상은 마음속에 기쁨과 행복은 다 물거품 같이 사라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마음의 분노와 고통에서 해방을 얻기 위해서 나는 이웃을 용서해 줘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치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상처 입힌 자, 때린 자에게서 우리가 마음속에 놓여남을 받을 수 있습니다. 내가 용서해주지 못하면 그 상대가 언제나 내 마음속에 아주 원수가 되어서 남아 있습니다.
한 국민학교 여 교장이 관절염으로 너무나 고통을 당했습니다. 온갖 약으로 치료를 받아도 그 관절염에서 낫지를 않았습니다. 그 여 교장 선생님이 교회에 와서 목사님하고 카운셀링을 했습니다. 그 결과로 알아보니까 그 여 교장 선생은 남편과 이혼을 했습니다. 남편이 이 여교장 선생을 버리고 다른 여자와 결혼해서 나가 버렸습니다. 10년 동안을 그 남편을 저주를 합니다.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저녁에 잘 때까지 그 남편을 욕하고 저주를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 미워하고 저주하는 마음이 관절염이 되어서 그 관절염의 고통을 당하고 모든 약을 써도 낫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그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선생님, 남편하고 이혼을 하십시오. 무슨 말씀을 합니까? 내가 10년 전에 이혼을 했는데... 예 법적으로는 이혼을 했어도 마음으로는 아직 이혼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마음으로는 아직 그 미운 남편을 마음에 끼고 늘 저주하고 미워했기 때문에 그것이 이 관절염을 일으킵니다. 오늘 이 시간에 주의 이름으로 그 남편을 용서해 주고 축복해 주고 당신의 마음에서 놓아주십시오. 그러면 그 남편이 떠나가면서 관절염도 떠나갑니다. 그래서 여 교장 선생님은 엎드려서 기도하고 하나님 앞에 그 남편의 죄를 다 용서해 준다고 말하고 오히려 그의 미래에 회개하고 구원을 받고 잘 살도록 축복 기도를 해 주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있지 아니하여 그 관절염은 깨끗이 낫고 온전히 건강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이러므로 상처를 입힌 자, 즉 때린 자에게서 우리의 마음이 놓여남을 받기 위해서라도 용서해줘야 되는 것입니다. 또 원수에게 변화를 끼치기 위해서는 우리가 용서해줘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완력으로 인생들을 회개시키려면 못할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천둥 번개를 치고 벼락을 때리고 너 회개하지 않고 예수 믿지 아니하면 때려죽인다고 하면 모두 다 엎드려 회개하겠지요. 그러나 그것은 자원하는 마음이 아니고 강제로 엎드려서 형식적으로 회개하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주 예수님을 보내셔서 우리 대신하여 죄를 짊어지고 온갖 고통과 괴로움을 다 겪으면서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예수님을 통해서 용서를 베풀어주신 것입니다. 사랑을 베풀어주신 것입니다.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한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쳐다보고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용서하고 사랑하며 품어주려고 하는 하나님의 그 크신 은혜를 생각할 때 깊이 감동하여 자기의 죄악을 버리고 예수께로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북한에 대해서 햇볕 정책을 하는 것도 똑같은 논리인 것입니다. 북한과 마주서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주먹은 주먹으로 함께 싸운다면 결국 이 땅은 전쟁이 일어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완악하고 도전적이고 온갖 해를 가하더라도 우리는 계속해서 사랑과 용서를 베풀어주면 그들은 별 도리 없이 어느 시간이 지나면 안 녹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따가운 햇빛이 비쳐 오는데 아무리 두꺼운 얼음장도 녹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햇빛을 비춰주고 용서하고 사랑을 베풀면 결국에는 아무리 완악한 북한도 녹아지게 마련인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법칙인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부모나 부부간 또는 이웃간에 받은 작은 마음의 상처로부터 큰 분노와 미움이 쌓이면 해소하기가 대단히 힘이 듭니다. 매일 같이 우리는 부부간에 용서를 해야 합니다. 남편은 아내를 매일 용서해야 합니다. 아내도 남편을 매일 용서해야 되며 부모는 자식을 매일 용서해야 하고 자식은 부모를 매일 용서해야 합니다. 가까울수록 우리들은 서로 상처를 입고 상처를 입히기가 쉽습니다. 그것을 언제나 치료하기 위해서는 용서라는 특별한 기술을 사용해야 되는 것입니다. 용서하지 않고는 우리가 쌓아놓은 담을 헐어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더구나 사랑하는 자식을 유괴범으로부터 살해를 당하고서도 가슴속에 치미는 분노와 원한과 복수심을 용서로 제거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용서를 통하여 그 고통에서 해방되지 않고는 우리의 삶을 망쳐버리고 말 것입니다. 우리가 살기 위해서는 용서해야 합니다. 가해자가 법적 심판을 받고 감옥에 가거나 혹은 사형을 당한다고 해도 상처 입은 우리 마음은 치료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상에서 원수를 위해서 용서를 구하신 예수님의 기도를 기억하고 상처받은 우리 마음을 치료받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해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늘 우리는 외우는 주기도문을 다시 한번 깊이 마음속에 음미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하는 이 하나님의 가르침인 용서의 기도를 우리의 마음속에 깊이 기억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사람들은 자기 중심으로 살고 자기 마음 문을 꽉 닫아 놓고 삽니다. 그리고 이웃과는 화해와 대화를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 정치 현실을 보더라도 국회에서도 늘 여당과 야당이 서로 대결하고 싸우지 용서하고 용납하고 막힌 담을 헐려고 하지 않습니다. 요사이에도 끝없는 대결과 투쟁이 있지 용서와 화해가 있지 않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가정들이 파괴되어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조그마한 일에 부부가 서로 용서하지 못함으로 화해와 대화를 하지 않고 파괴됩니다. 부모와 자식간에도 서로 등을 돌리고 자식이 부모를, 부모가 자식을 미워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하물며 이웃간에 우리는 대화의 문을 열지 않고 용서를 하지 않습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신앙 가운데 용서한다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것입니다. 일만 달란트 빚진자가 자기는 임금님에게서 모든 죄를 다 탕감을 받았으면서도 자기의 동료 100데나리온 빚 진 자는 용서해주지 않습니다. 자기 이기주의로만 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기에게 용서해 준 임금에게 용서받은 일만 달란트도 다 취소되고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마음의 감옥 속에 있습니다. 미움, 원한, 분노, 시기, 질투, 고통의 감옥 속에서 허덕이고 있습니다. 내가 감옥에 안 들어갔다고 해도 내 심령이 그런 감옥 속에 들어가 있습니다. 어떠한 사람은 온갖 폐병, 관절염, 신경통, 그리고 정신이상 이러한 질병의 감옥 속에 들어 있습니다. 또 어떠한 사람들은 마음이 언제나 부정적이 되어서 나는 못한다 나는 안된다 나는 할 수 없다 나는 못 산다는 이러한 부정적인 감옥 속에 들어 있습니다. 그러한 부정적인 감옥 속에 들어 있으면서 돈이 아무리 많은들 돈으로서 행복을 얻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집에서 생활한들 그 집이 의미가 없고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음식을 먹어도 그것이 조금도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합니다. 내 마음이 감옥 속에 들어가 앉아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내 육체가 감옥 속에 들어앉아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내 환경이 부정적인 감옥에 들어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눈에 안 보이는 이 감옥에서 해방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눈에 안 보이는 감옥에서 해방을 시켜 주기 위해서 예수님이 2천년 전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몸을 찢고 피를 흘려 하나님 앞에서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 죄를 용서해 주셨으므로 용서를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믿음으로 값없이 받아들였으면 우리도 이제 이웃을 용서해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용서받는 자가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니라 용서하는 자가 손해를 봅니다. 용서하기 위해서는 대신 십자가를 걸머져야 됩니다. 용서하기 위해서는 일만 달란트 손해를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용서하면 내 자존심이 상하고 내가 고통스러운데 내가 왜 용서하랴 그러나 내가 자존심이 상하는 십자가를 걸머져야 용서를 해 주고 용서해야 내가 마음의 고통의 감옥에서 해방되어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 제가 여러분에게 간구하는 것은 제일 가까운 사이인 부부간에 서로 용서해줘야 되는 것입니다. 과거에 쌓인 여러 가지 잘 못을 다 마음에 쌓아놓고 용서해 주지 아니하면 이것이 점점 마음에 병이 되어서 애정은 사라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남편은 아내를 깊이 용서해 줘야 되는 것입니다. 자기 마음속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 이 죄를 용서해 줍니다. 용서할 힘을 주시옵소서. 그렇게 말할 뿐 아니라 나는 당신이 내게 잘못한 모든 것을 다 용서해 줍니다. 이제는 그 죄로 말미암아 내가 놀라지 않는다고 그렇게 말하십시오. 아내도 남편에게 하나님이여 우리 남편을 다 용서하고 남편을 사랑할 수 있도록 힘을 주옵소서. 그리고 남편에게 옛날 잘못한 것 나는 책잡지 않는다 나는 다 용서해 준다. 부부간에 서로 솔직하게 용서해서 막힌 담을 무너뜨리십시오. 용서하지 않을 때는 절대로 막힌 담이 헐려지지 않습니다. 그 자리에서 용서하십시오. 해가 지기 전에 여러분 작은 일, 마음이 하나라도 거슬리면 즉시로 여러분은 용서를 해 주십시오. 용서는 자신을 해방시켜 주는 역사인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자식이 부모를 용서해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부모하고 같이 살든지 안 살든지 부모에게 등을 돌리고 부모에게 효를 행하지 않고 있습니다. 어릴 때에 부모가 나에게 잘못했다는 그런 원한이 마음속에 쌓여서 부모를 용서해 주지 않기 때문에 부모를 사랑할 수 없고 효도를 다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축복을 받지 못합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부모에 대해서 용서를 해주어야 합니다. 어느 자식이든지 대개 부모에 대한 불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릎을 꿇고 하나님 아버지 내 아버지 어머님에 대한 모든 과거에 내게 상처 입힌 것을 용서해 드립니다. 주님께서 용서할 수 있는 힘을 주옵소서. 부모를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식을 용서해줘야 하고 더구나 자신을 용서해줘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인생에 살면서 여러 가지 잘못을 저지르고 불만족한 일을 할 때가 많습니다. 자기 자신을 미워할 때가 많습니다. 오늘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미워합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실망하고 원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어서 건지기까지 한 우리 자신임으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어 우리 자신을 용서할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여 내 자신을 용서합니다. 내 자신이 이런 이런 죄를 하나님은 용서 해주셨지만 내가 나를 용서해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죄를 다 내가 용서하니 예수님의 보혈로 씻어 주시옵소서. 스스로도 용서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베드로가 예수께로 와서 나에게 범죄한 자를 일곱 번만 용서하면 되겠습니까? 베드로는 큰 마음 먹고 그 소리를 했습니다. 그럴 때 주님이 베드로를 잔잔히 보시더니 하는 말이 베드로야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 하루에 490번이라도 용서하라고 말했었습니다. 왜? 용서는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막힌 담을 헐어 제끼는 것이요, 용서는 우리 마음을 분노와 좌절과 절망의 감옥에서 해방시켜 주는 것이요, 용서는 우리 원수를 우리 주위에서 영원히 떠나가게 하여 주는 것이요, 용서는 그를 통하여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나타내는 하나의 채널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주기도문을 외울 때에 언제나 그것을 내 마음속에 연결시켜서 외워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진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이여 내 남편을 용서합니다. 내 아내를 용서합니다. 내 부모를 용서합니다. 내 자식을 용서합니다. 내 이웃을 용서합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의 능력을 주어서 용서할 수 있는 힘을 주옵소서. 그래서 해방을 얻으십시요. 자유를 얻으십시요. 기도가 안 나오는 죄에서 해방을 얻고 마음에 분노와 시기와 질투와 고통에서 해방을 얻고 육신의 질병의 감옥에서 놓여나서 해방을 얻기 위해서는 상대가 용서를 받아들이든 안 받아들이든 내 편에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용서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에게 자유가 오고 해방이 오고 하나님과 막힌 담이 없고 부르짖을 때에 응답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채워 주시는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우리 아버지여 우리는 용서라는 기술을 잃어버리고 삽니다. 조그마한 상처도 가슴에 새겨놓고 피를 흘리게 합니다. 아버지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어찌 할 도리 없이 상처를 입히고 상처를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럴 때마다 이 상처를 치료해야만 하는데 용서하지 않고는 치료받지를 못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예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몸을 찢고 피를 흘려 죽으셨습니다. 큰 희생을 지불하고 용서해 주었으니 우리는 용서에 빚진 사람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용서를 풍성히 받았은즉 우리도 예수님을 의지하고 우리의 제일 가까운 남편 아내 자식 형제 그리고 이웃을 용서하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하루에 일곱 번씩 일흔번 490번이라도 용서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그래서 우리 마음이 고통의 감옥에서 해방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분노와 질투와 시기와 미움과 고통의 감옥에 들어 있지 말게 도와 주시옵소서. 육체의 여러 가지 질병의 감옥에 갇혀 있지 말게 도와 주시옵시고 환경의 부정적인 생각과 저주의 감옥에서 해방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용서만이 우리 자신을 해방시키는 능력이 되고 우리가 감옥에서 끌려 나오는 방법이 되오니 내 아버지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용서해 준 것 같이 우리도 우리 이웃을 용서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