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2월 26일
제목: 사랑을 막는 장애물
성구: 고전 13:13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사랑을 막는 장애물”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이 있는 곳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아무리 하나님을 믿는다고 떠들어도 가슴속에 독한 시기와 질투와 미움이 있으면 이는 거짓된 믿음이요 하나님이 그 사람과 같이 계시지 않습니다. 탄식스럽게도 오늘날 장엄한 교회를 짓고 엄숙한 예배를 드리면서도 성도로 자칭하는 사람들의 가슴속에 종교만 가득하고 사랑이 식어져버린 까닭에 그곳에 하나님은 계시지 않습니다.
요한일서 3장 13절로 19절에는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이상히 여기지 말라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보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로다” 이와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사랑을 막는 장애물이 무엇인지 오늘 살펴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첫째로, 율법주의라는 자 막대기가 우리 가슴속에 있으면 사랑의 흐름을 막아 버립니다. 구약 시대의 하나님은 진노와 심판의 하나님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산에 왔을 때에 하나님께서 시내산 온 전체에 연기로 가득하게 채워 놓으시고 불길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셔서 율법을 주시고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율법을 통해서 선민 언약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율법은 정죄하고 심판하며 벌하고 죽이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육체가 약해서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지 못함으로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태도는 항상 진노와 심판인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에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범죄하여 율법을 어김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진노를 받아 멸망을 당하고 마는 것입니다.
에스겔 39장 23절로 24절에 보면 “열국은 이스라엘 족속이 그 죄악으로 인하여 사로잡혀 갔던 줄 알지라 그들이 내게 범죄하였으므로 내 얼굴을 그들에게 가리우고 그들을 그 대적의 손에 붙여 다 칼에 엎드러지게 하였으되 내가 그들의 더러움과 그들의 범죄한대로 행하여 그들에게 내 얼굴을 가리웠었느니라” 그러므로 율법이 있는 동안에는 언제나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과 형벌이 있습니다. 왜냐 법은 언제나 우리의 약점을 들추어 내고 우리를 정죄하고 심판하고 죽이는 역할을 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율법이 없으면 죄도 없습니다. 율법이 있는 다음에는 죄가 언제나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율법 앞에서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전혀 없습니다. 이러므로 구약 시대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앞에 율법으로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항상 죄를 짓고 정죄하고 심판 당함으로 하나님은 진노의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러나 신약 시대의 하나님은 긍휼과 자비와 용서의 하나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율법하에 지은 모든 죄를 대신하여 다 갚어 버렸기 때문인 것입니다.
로마서 3장 23절로 24절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스스로 의를 행해서 의롭게 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용서함을 받아서 이제는 심판 받을 죄가 없기 때문에 의롭함을 얻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율법을 완성하시고 십자가에서 율법을 철폐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2장 14절에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예수 믿는 우리들을 보실때에 율법의 잣대 없이 보심으로 정죄와 심판과 벌이 없이 오직 사랑으로만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율법이 없으니 허물을 들추어 낼 수도 없고 정죄하고 심판할 수도 없습니다. 예수님이 율법을 다 완성하시고 십자가에 율법을 못 박아서 제해 버렸기 때문에 신약시대에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가 율법으로써 맺은 언약의 관계가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용서와 의와 사랑을 받는 관계가 되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4장 4절로 7절에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 이제는 심판의 대상이 아니라 용서 받고 사랑 받는 아들이 되고 하나님의 후계자가 되는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사랑을 막는 장애물은 우리의 마음에 있는 율법의 잣대인 것입니다. 율법이 우리 마음속에 있는 이상 상대를 볼 때 언제나 허물을 보고 정죄하고 심판하고 죽이려고 합니다. 율법의 잣대를 제켜 버리면 이제는 있는 그대로 보고 사랑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율법으로 이웃을 보면 결점만 찾아냄으로 언제나 비평하고 되고 비난하고 정죄하고 사랑은 질식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7장 2절로 3절에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남을 율법으로 보면 다른 사람들도 우리를 율법으로 보기 때문에 서로 비평하고 서로 비난하고 서로 심판하고 사랑은 다 질식하고 맙니다. 그러나 주님의 십자가에 율법을 이미 주께서 못 박았음으로 우리도 우리의 가슴속에 있는 율법을 십자가에 못 박아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족들과 우리의 이웃과 우리의 친지들과 대할 때 우리의 가슴속에 비평과 평론의 율법의 잣대를 제켜 버리고 보면 우리는 순수한 사랑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웃을 있는 그대로 용납하고 사랑하면 사랑이 큰 변화를 가져옵니다. 사랑의 법이 이 우주에서 최고의 법입니다.
골로새서 3장 13절로 14절에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이렇기 때문에 우리가 율법을 마음에 제켜 버리고 이웃을 바라보면 사랑하게 되지만 율법을 가지고서 저렇게 할 수 있느냐? 저렇게 하면 잘못한 것이지? 저것은 못된 짓이다. 저것은 나쁘다, 아예 좋지 못하다, 이런 평론을 자꾸 하게 되는데 평론을 하면서 사랑을 베풀 수는 절대로 없습니다. 율법을 제켜 버리면 그럴 수도 있다. 착한 사람이다. 그래도 좋은 사람이다. 사랑해야겠다. 그런 마음이 생겨 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가장 가까운 부부끼리 율법을 제켜 버려야 합니다. 남편이 아내를 볼 때 율법을 마음에 가지고 이것도 못한다, 저것도 못한다, 이것도 못 났다, 저것도 못났다 평론하기 시작하면 사랑은 사라집니다. 또 아내가 남편을 볼 때 마음의 율법의 잣대를 가지고 있으면 왜 저사람은 못 났는가, 왜 실력이 없는가, 왜 돈을 잘 못 벌어 오는가, 이렇게 자꾸 평론하기 시작하면 사랑이 식어집니다. 율법을 제켜 버리면 그만 평론이 그치고 마는 것입니다. 판단이 그치고 맙니다.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고 용납을 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부부간에도 율법을 제켜 버리고 보아야 사랑할 수 있고 부모와 자식간에도 율법을 제켜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이웃간에도 율법을 제끼고 보아야 있는 그대로 보고 사랑할 수 있지 율법을 가슴속에 두면 항상 비평하고 평론하고 판단하게 되고 종국적으로는 절대로 사랑을 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율법의 잣대는 사랑을 막는 중대한 장애물이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과거를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사랑이 우리 마음속에 흘러갈 수가 없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과거의 모든 죄를 용서치 아니하시고 기억하고 계신다면 우리를 사랑치 못할 것입니다. 우리가 과거에 못된 짓 얼마나 많이 했습니까? 그것을 전부다 기억하고 계신다면 그 과거의 못된 짓 기억 때문에 우리를 하나님은 결코 사랑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하여 용서하실 때에 그냥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기억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기억도 하지 않으신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미가서 7장 19절에 “다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시편 103편 12절에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용서하시고 잊어 버리십니다. 예수님의 보혈은 우리의 과거를 흰눈보다 희게 씻어 버리고 맙니다.
이사야 43장 25절에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7장 14절에 “내가 가로되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아무리 때가 많더라고 씻어서 희어져 버리면 과거의 때는 잊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영접할 때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면 잊어버립니다. 마귀는 자꾸 과거의 죄를 들추어내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회개한 과거의 죄는 잊어버리고 난 다음 다시는 기억도 하지 아니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여러분 과거에 이미 회개한 죄가 자꾸 들추어지면 그것은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라 사탄의 역사인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기억지 아니하심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계속해서 넘치도록 사랑을 해 주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만 자백하면 용서하시고 씻으시고 기억도 아니하시고 죄가 기억에 나지 않기 때문에 우리를 한없이 사랑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우리 이웃을 용서해 주기로 결심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먼저 자기를 용서해야 합니다. 자기의 과거의 모든 잘못한 죄를 모두다 기억하지 말고 잊어 버려야 합니다. 내가 서대문에 있을 때 자매님 한 분이 크게 병들었습니다. 극단적인 우울증에 걸려서 어린아이에게 젖도 먹이지 아니하고 완전히 폐인이 되었습니다. 아이가 셋이나 있는데요 젊은 남편이 그 부인을 데리고 내 사무실에 와서 우리 집 사람을 좀 살려 달라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병원이란 병원은 다 다녀 보아도 아무 병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우울증에 걸려서 절망이라는 것입니다. 남편을 밖으로 내 보내고 그 자매님에게 물었습니다. 자매님이 우울증에 걸린 것은 자매님 자신의 죄를 용서하지 못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자매님이 무슨 죄를 용서하지 못합니까? 그러니까 날 보고 정색을 하며 여기가 경찰서입니까? 당신이 형사요 나보고 그러더라고요. 내가 경찰서도 아니고 형사도 아니지만 자매님이 지금 우울증에 걸려서 아이 젖도 안 먹이고 남편도 돌보지 않고 집안 살림 안 하는 것은 자기의 죄를 용서하지 않기 때문 그렇다. 자매님은 용서하지 못하는 죄를 짓고 있습니다. 그것을 고치지 아니하면 자매님도 죽고 어린아이들도 죽고 젊은 남편도 파탄에 이르게 합니다. 오늘 이 시간에 자기를 용서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당신의 죄를 다 주님께 고백하십시오. 그러니까 머리를 흔들면서 하는 말이 내 죄는 하나님이 용서 못합니다. 아무도 용서 못합니다. 무슨 죄가 그렇게 많습니까? 그러니까 그 다음 눈물을 흘리고 제게 그 이야기를 합니다. 자기는 조실부모하고 언니 집에서 살았는데 언니가 자기를 자식처럼 사랑해 키워줘서 대학까지 보내 주었는데 대학을 다닐 때 언니가 마지막 아이를 낳기 위해서 병원에 가 있을 동안에 그만 형부하고 잘못된 짓을 했습니다. 그래서 언니가 없는데 형부하고 잘못된 짓을 하고 난 다음에 언니가 병원에서 퇴원하고 난 다음에도 그 형부하고 이 여관에서 저 여관에서 만났습니다. 그래서 그 결과로 그 마음속에 말할 수 없는 정신적인 타격을 입게 되고 그가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들어가자 마자 그 생활을 피하기 위해서 자기에게 프로포즈하는 첫째 남자하고 무조건하고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남편이 좋은 사람이라, 그래서 좋은 집도 구하고 애도 셋이나 낳고 살게 되었으니 그 죄책감이 점점 심해지고 점점 심해져서 이제는 완전히 우울증에 빠졌습니다. 나는 이 남자에게 사랑 받을 자격이 없다. 이 어린아이에게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다. 나는 나쁜 여자다 나는 아주 죽일 여자다 완전히 정죄함에 잡혀서 헤어나질 못합니다. 그래서 그 여자가 하는 말이 나는 절대로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도 나를 용서 못합니다. 그래서 내가 그 여자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자매님, 자매님하고 저하고 호숫가에 앉아 있다고 하십시다. 돌 던지기를 하는데 자매님은 큰 돌맹이 하나 들고 있고 나는 작은 돌맹이 하나 들고 있습니다. 내가 작은 돌맹이를 물에 던지면 어떻게 되지요. 퐁당하면서 어디로 갑니까? 가라앉습니다. 자매님이 큰 돌을 던지면 풍덩하고 어디로 갑니까? 가라앉습니다. 뭐가 다릅니까? 소리만 다릅니다. 작은 돌을 던졌으니 퐁당하고 가라앉고 큰 돌을 던졌으니 풍덩하고 가라앉지만 가라앉으면 다 똑같이 가라앉습니다. 큰 죄도 지옥 가고 작은 죄도 지옥 가고 자매님의 그 죄도 지옥 가고 내가 지은 조그마한 죄도 예수 믿지 않으면 지옥 갑니다. 큰 죄도 주님이 용서하시고 작은 죄도 주님이 용서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께 맡기십시오. 그 말이 그 마음속에 충격이 되어서 그만 바닥에 꿇어앉아 통곡을 하고 울고 하나님이여 나의 죄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나의 이 더러운 죄를 용서하셔서 예수의 피로써 용서받고 자기를 용서하게 되자 감사하고 울고 뛰고 해서 내가 사무실 문을 열고 남편을 들어오라고 하니까 남편이 들어오니까 뛰어 가서 남편 목을 안고 우니까 남편 눈이 휘둥그러져서 이것 어떻게 된 일이냐고 한번도 결혼하고 내 목을 안아 본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이젠 새 사람이 되었으니까 묻지 말고 데려 가라고 그 다음 이후로 그 부부는 인정있고 다정하게 서대문에 있을 때 늘 출석하셨습니다. 우리가 자기를 용서해야 되는 것입니다. 자기를 용서하지 않고 정죄하면 절대로 남을 사랑할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부모를 용서해야 합니다. 여러분 어느 자식치고 부모에게 불평 없는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부모가 어떻게 자식들을 다 똑같이 사랑하고 돌봐줄 수가 있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자식들은 다 부모에 대해서 불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기도 부모가 되면 자식들에게 또 불만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부모를 용서해줘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부모가 잘못한 것도 다 용서하고 그 기억을 없애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형제도 용서해야 합니다. 형제간에 살면 서로 물고 찢고 싸우지 않습니까? 그것을 기억하고 있으면 안됩니다. 형제도 용서해 주기로 결심하고 용서해야 합니다. 말할 필요 없이 부부간에는 용서해야 되고 이웃도 용서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1장 25절에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셨더라” 나중에는 하나님까지라도 용서해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하실 수 있느냐 하나님 해도 너무하시다 하나님이 나를 버리시나보다 하나님께 대한 원망을 하는데 하나님에 대한 원망도 용서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결코 사랑을 받거나 사랑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과 나는 오늘 이 시간에 마음속에 용서하기로 철저히 결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용서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마귀의 참소를 물리쳐야 우리는 사랑을 할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마귀는 우리에게 와서 우리에게 참소를 해서 우리로 하여금 위축되고 사랑을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마귀는 와서 말하기를 너희는 하나님께 버림 받았다. 너 같은 것은 사랑할 자격도 없고 사랑 받을 자격도 없다는 것입니다. 제가 서대문에 있을 때에 모 대학을 졸업한 유능한 여성이 수면제를 과다하게 먹고 적십자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다 세척해 내고 산소 호흡기를 끼고 있는데 자매님 하는 말이 뭐냐하면 나는 죄가 너무 많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나는 지옥 가기 마땅하기 때문에 죽으려고 작정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 자매에게 말했습니다. 자매님에게 죄를 죄가 많다 사랑 받을 수 없다고 자꾸 말하는 것은 마귀가 하는 말이지 하나님 말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고 예수님은 당신을 이처럼 사랑하사 당신의 죄를 다 짊어지고 몸 찢고 피 흘려 죄를 용서한 주님이 왜 자꾸 죄를 지적하고 너 같은 사람은 자격이 없다고 합니까? 예수님의 피로써 용서해주고 사랑해 주어서 자격 있게 만들어 주었는데 자꾸 자격이 없다는 것은 사탄의 일이다. 마귀를 내어쫓아라 마귀가 언제나 정죄하고 참소하고 심판하는데 당신은 마귀의 참소에 걸렸다. 그래서 그 자매님이 깨닫고 마귀를 배제하고 쫓아내고 난 다음 그 마음에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되고 그 마음속에 평안을 느끼고 이웃을 사랑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너는 하나님께 버림받았다. 너는 자격이 없다. 이것은 참소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얼마나 사랑하셔서 그 아들 예수님을 주셨습니까? 이것이 증거가 되지 않습니까? 또 마귀가 와서 너는 죄가 너무 많아서 사랑 받을 자격이 없고 사랑할 자격이 없다고 하는데 여러분 이 세상에 죄 없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예수님께서도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니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 죄를 용서하시면 다시 그 죄를 들추지 않습니다. 죄를 자꾸 쑤시는 것은 사탄이 참소하기 위해 하는 것임으로 죄를 자꾸 들추는 사탄을 물리쳐야 되는 것입니다. 또 마귀는 와서 말합니다. 네가 어떻게 해도 네 이웃은 너를 비웃고 있다. 사람들이 다 너를 비웃고 너를 무시하고 멸시한다 그러므로 너는 인간 이하의 존재다. 여러분 이웃이 멸시하든 비웃든 손가락질을 하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한다고 생각하면 우리는 담대하게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웃을 의존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해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용서하시고 의롭다하시고 사랑해 주시면 그로써 나는 만족하고 그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해 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 마귀는 와서 사랑 같은 것 해 봤자 효과도 없고 손해만 본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 마귀의 참소를 믿으면 안됩니다. 사랑만이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사랑만이 우리에게 행복을 갖다 줄 수 있고 기쁨을 갖다 줄 수 있지 사랑이 효과도 없고 사랑하면 손해만 본다는 것은 거짓말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 율법으로 비평하고 평론하고 심판하는 것은 언제나 분쟁을 일으키지만 사랑은 화해를 가져오고 용서를 가져오고 일치를 가져오기 때문인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4장 7절로 8절에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마귀의 참소를 우리가 단호하게 물리쳐서 부정적인 생각이나 말로써 공격하는 원수 마귀가 우리에게 다가오지 못하게 해야 사랑이 막히지 않습니다.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마귀는 완전히 거짓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2장 10절로 11절에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가로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이루었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또 여러 형제가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마귀는 어린양의 피와 증거의 말로 이겼다 했으므로 마귀가 여러분 참소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나에게서 떠나가라고 말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그 보배로운 피의 능력을 의지해서 명하노니 물러가라 대적하면 마귀는 한 길로 왔다가 일곱길로 도망치게 될 것입니다.

넷째로, 우리가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성령님의 역사를 과소평가해서는 안됩니다. 여러분 성령께서 오셔서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주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5장 3절로 5절에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라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성령으로 우리 마음속에 부은 바 되어서 그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는 자기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령은 보혜사라고 하지 않습니까? 보혜사라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아 우리를 돕기 위해서 항상 우리 곁에 계시는 분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성령께 보혜사시여 나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주사 사랑을 가지고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렇게 성령께 부탁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이 우리 가슴속에 사랑을 부어줍니다.
여러분 스데반을 보십시오. 돌무더기 속에 들어가면서도 원수를 향하여 축복을 해 주었습니다. 원수를 미워하거나 정죄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성령이 충만했기 때문에 성령이 하나님의 사랑을 스데반의 가슴속에 부어주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사랑할 수 있는 힘이 없다고 말하지 마세요. 나는 사랑할 수 있는 힘이 없습니다. 나는 그런 사람 절대로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말하면 안됩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영이시오. 예수님의 영이시니 십자가의 보혈을 믿는 우리들에게 성령께서 사랑을 채우시기 때문에 나는 못해도 성령께서 할 수 있게 해줍니다. 바울은 말하기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에게 힘을 주시면 우리는 사랑할 수 있습니다.
에스겔서 36장 26절에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께 부탁하면 성령께서 우리의 완악한 마음을 제켜주시고 우리에게 새 마음, 부드러운 마음을 주셔서 사랑하고 용납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천국이 천국이 되는 이유는 사랑이 충만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천국이 황금 보석집 열두 진주 문이 있기 때문에 천국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물리적이 천국이 천국이 아니라 천국은 사랑이 충만하기 때문에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지옥이 지옥인 것은 환경이 나빠서 지옥이 아닌 것입니다. 미움이 가득하기 때문에 지옥인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집을 짓고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음식을 먹어도 가정에 미움이 가득해서 물고 찢고 싸우면 그것은 생지옥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천국이나 지옥 생활을 하게 됩니다. 사랑이 넘쳐나면 기쁨이 충만하고 천국이 이미 가슴속에 가득한 것입니다. 그러나 독한 시기나 미움이 가득하면 이미 그 마음은 지옥이요 오직 슬픔과 고통만 있을 따름인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장차 기다려서 천국에 올라가겠다. 장차 기다려서 지옥 가겠다고 할 필요가 없는 것은 벌써 이 마음속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랑이 넘쳐 나면 사랑이 있는 곳에는 기쁨이 넘쳐 나는 것입니다. 사랑과 기쁨이 있는 곳에는 천국이 이미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에 독한 시기와 분노와 미움이 꽉 들어 차 있으면 이미 마음속에 슬픔과 고통과 괴로움이 꽉 들어 차 있으니 벌서 지옥 속에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워 왔다 말하고 천국이 여기 있다 저기 있다 못하리니 천국이 너희 안에 있느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최고의 법인 사랑의 법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최고의 법입니다. 이 사랑을 하고 살기 위해서는 우리 마음속에 남을 평론하고 비평하는 율법의 잣대를 제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나 이웃의 과거의 죄의 기억을 다 용서하고 깨끗이 씻어 버리고 잊어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꾸만 나나 이웃에 대해서 부정적인 말을 하고 참소하는 원수 마귀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보혈로 내어쫓아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시각각으로 하나님의 보혜사 성령님께 의지해서 성령이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마음속에 부을 수 있도록 간절히 부탁해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사랑이 제일이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러나 아무리 예수를 잘 믿는다고 하더라고 사랑이 없으면 그는 종교만 있었지 하나님은 계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사랑이 있는 곳에 하나님이 계시고 마귀는 미움 이기 때문에 미움이 있는 곳에는 마귀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를 받았은즉 우리는 성령의 도움을 받아서 항상 율법의 잣대를 제끼고 사랑을 하고 모든 죄악을 다 용서하고 잊어버리고 사랑을 하고 사는 우리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주님께서 율법으로 이스라엘을 보셨을 때는 비평하고 평론하고 정죄하고 심판해서 항상 진노의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걸머지고 율법을 완성하시고 율법을 제해 버리시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보실 때에 비평이나 평론이나 심판으로 보지 않고 사랑으로 보심으로 오늘날 우리가 사랑 받고, 또 사랑 받고 또 사랑 받고 있사옵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에 대한 사랑의 하나님이시지 진노의 하나님이 아니신 것은 율법이 제켜 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원하오니 우리 부모 자식간에 부부간에 친구간에 이웃간에 율법을 제켜 놓고 사랑으로 대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죄를 용서하신 하나님 기억도 하지아니하시오니 우리의 죄를 기억지 아니하신 우리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도 이웃의 죄를 기억하고 거듭 거듭 그 말을 반복하지 말게 도와 주시옵소서. 마귀를 물리치고 성령이여 오셔서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으로 넘치게 넘치게 넘치게 채워 주시옵소서.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고 의지하오니 성령이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